개인일반

[친절한판례氏] 외할아버지와 사는 딸을 납치한 아빠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1.11 05:05

친딸이라 하더라도 외할아버지 등 다른 보호감독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남용해 미성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미성년자 약취유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10세 딸을 둔 A씨는 정신지체 2급 장애가 있었습니다. A씨의 부인은 1999년 교통사고로 5년간 입원 치료를 받다 2004년 사망했습니다. 그 후 A씨는 자신의 딸을 장인인 B씨에게 맡기고 홀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A씨는 B씨가 교통사고 합의금을 관리하면서 자신에겐 용돈을 조금씩만 주고 있다고 판단, 사망한 부인의 유족들에게 교통사고 합의금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또 A씨는 자신의 친구와 함께 친딸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딸을 외할아버지에게 맡겨둔 것 때문에 소송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한 A씨는 딸이 그동안 학대받았다는 등의 허위 주장을 하면서 유리하게 소송을 이끌어나가기로 한 겁니다. 

A씨는 ‘할아버지에게 간다’고 딸을 안심시킨 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이후 친구 집, 고아원 등을 들른 뒤 아동복지상담소에 딸을 데려가는 중 검거됐습니다. 검찰은 A씨에게 미성년자 약취유인죄를 적용해 기소했고 재판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습니다.

사건의 쟁점은 외할아버지 손에서 양육되고 있는 자신의 딸을 몰래 데려간 친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친딸을 데려간 게 범죄가 될 수 있냐는 거죠. 대법원은 A씨에게 징역 4개월의 형을 선고유예한 원심을 받아들였습니다. 

미성년자 약취유인죄란 형법에 규정된 범죄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미성년자 약취유인죄에서 '약취'란 폭행 또는 협박, '유인'은 속이거나 유혹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미성년자를 데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A씨는 “친부인 A씨가 딸과 함께 살기를 원해 함께 주말을 보내며 하룻밤 지내기 위해 데려온 것이고 영리의 목적으로 데려오지 않았다”며 “친권자로서 정당한 거소지정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민사소송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목적으로 외할아버지의 양육권을 침해해 딸을 데려간 후 도망가지 못하도록 산 속의 개 사육장에서 재우기도 했다”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심 법원 역시 “비록 자신의 딸이라고는 하나 살던 집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라 나설 생각이 없는데도 강제로 차에 태워 집에 돌려 보내주지 않은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징역 2년에 2년간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감형, 징역 4개월 형의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A씨가 딸인 피해자를 스스로 양육하며 생활하려는 목적이 일부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은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는 자라 하더라도 다른 보호감독자의 보호권을 침해하거나 자신의 보호권을 남용해 미성년자 본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미성년자 약취유인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며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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