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판 돈 가져간 오빠 "아, 상속포기각서 쓴다니까"

[고윤기 변호사의 상속과 유언 이야기]

고윤기 변호사(로펌 고우) 2018.01.17 05:15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아버지는 큰오빠를 편애했습니다. 큰오빠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학비도 생활비도 많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작은 오빠와 여동생인 저는 성적이 더 좋았는데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아버지는 큰오빠가 결혼할 때 빚을 내 집을 사주고, 이런 저런 명목으로 많은 돈을 줬습니다. 

그런데도 큰오빠는 어느 날 사업을 하겠다면서 아버지에게 사업자금을 달라고 합니다. 마음이 약한 아버지는 선산을 팔아서 큰오빠의 사업자금을 줬습니다. 저와 작은 오빠는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큰오빠에게 항의하자 큰오빠는 아버지의 남은 재산을 자신이 상속받지 않겠다는 상속포기 각서를 작성해 주겠다고 합니다.

요즘 부모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자식이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특정한 자식에게 사업자금 등 명목으로 돈을 준 경우, 다른 자식들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안처럼 ‘상속포기 각서’를 쓰면서까지 사업자금을 부모에게서 받아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처음부터 아버지가 큰 오빠에게 사업자금을 대 주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부모가 특정한 자식을 편애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전 재산을 큰아들에게 증여하여도, 다른 자식들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적어도 부모 생전에는 그렇습니다. 

그럼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사업자금을 받아가면서 동생들에게 작성해 준 이 상속포기 각서는 효력이 있을까요? 상속포기는 말 그대로 상속을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속포기는 ‘상속’이 이루어 졌음을 전제로 합니다. 법률적 의미로 상속은 피상속인이 돌아가신 시점에 시작됩니다. 피상속인인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상속재산분할협의, 상속포기서의 작성 등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작성한 상속포기 각서는 효력이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속포기 각서를 받으면서, “아버지로부터 사업자금으로 ○○○원, 결혼할 때 주택 ○○○원을 증여받았다”라는 문구를 삽입하면 됩니다. 이 각서가 비록 상속포기서로는 효력이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큰 오빠가 생전에 아버지로부터 증여를 받았음을 증명하는 서류로는 기능합니다. 

우리 민법 제1008조에 따르면 공동상속인 중에서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를 받은 경우 이를 특별수익으로 인정하여 상속에 고려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큰오빠가 먼저 받아간 재산이 특별수익으로 인정되면, 큰오빠는 먼저 받아간 만큼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상속재산과 관련한 소송을 하다보면, 이 특별수익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증여받은 사람이 문서로 증여사실을 인정해 주면, 나중에 상속 분쟁이 일어난 경우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고윤기 변호사(ygkoh@kohwoo.com)는 로펌고우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상속, 중소기업과 관련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00인 변호사, 서울시 소비자정책위원회 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할 법률이야기’, ‘스타트업을 위한 법률강연(법무부)’의 공저자이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