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를 위한 '꼼수 증세'?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정재웅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2018.01.18 05:2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우리나라에는 특정 분야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투자금의 일부만큼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가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상 투자금액의 10%을 사업소득에 대한 소득세 또는 법인세에서 공제해 주는 규정이 대표적이었다. △연구 및 인력개발을 위한 시설 또는 신기술의 기업화를 위한 시설(제11조) △에너지절약시설(제25조의2) △환경보전시설(제25조의3) △의약품 품질관리 개선시설(제25조의4) 등이 세제혜택 대상이다.

그런데 이 규정은 2014년 1월1일 조세특례제한법이 개정되면서 공제율이 3%(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견기업 5%, 중소기업 10%)로 대폭 축소됐다. 이어 2016년에는 1%로 더욱 줄었다. 기업 규모별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시설들은 연구 및 인력개발, 에너지절약, 환경보전, 의약품 품질관리 개선을 위한 것으로 국민복지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투자를 장려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복지를 외치던 국가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내세워 세액 공제 범위를 축소함으로써 시설투자의 유인을 사실상 제거해 버린 결과가 됐다.

문제는 조세 분야를 중심으로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필자조차도 최근에야 법률이 이렇게 개정됐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을 정도로 공론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규모를 대폭 줄이면서도 제대로 된 이유조차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률 개정 당시 관보에 게재된 개정 이유를 찾아봐도 공제율을 축소하는 분명한 이유는 나와있지 않았다.

조세 분야에서 공제혜택을 주던 것을 폐지하거나 혜택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납득할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거나 상당한 시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시행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충분한 공론화 과정도,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조세에 대한 법류을 바꾸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기존에 10%였던 명목세율을 20%로 올려서 적극적으로 세금을 더 걷는 것만이 증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당한 이유를 갖고 국가차원에서 세제적 혜택을 주고 있던 것을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제거 또는 축소함으로써 실효세율을 높여 국민의 세부담을 실질적으로 늘리는 것도 증세에 해당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증세 없는 복지'가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상당수 국민들이 그 생각에 동의했다고 볼 수 있기에 증세 없는 복지 그 자체의 당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증세 없는 복지가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답을 찾는 대신 '증세는 없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른바 '꼼수 증세'를 시도하는 데 있다. 

명목세율을 인상하는 것과 같이 눈에 금방 띄는 방식이 아닌 공제율을 축소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실효세율을 높이는 것은 국민들이 증세를 한 것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실질적 증세였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국민들이 느낄 배신감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걱정스럽다.

국가의 조세정책에는 국민들의 이해와 자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꼼수 증세가 있는 한 조세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협력은 기대할 수 없다. 꼼수가 아닌 당당하고 솔직한 과세 과세행정을 기대해 본다. 증세 없는 복지가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솔직하고 투명한 과세행정을 펴는 것이 우리나라가 조세 선진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법무법인(유) 화우의 정재웅 변호사는 조세 관련 쟁송과 자문이 주요 업무 분야다. 그 동안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 상속증여세, 관세 등 전 세목에 걸쳐 다수의 조세쟁송과 자문사건을 수행했다. 강남세무서, 서대문세무서 등에서 외부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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