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상통화 겨눈 '붉은 깃발'의 운명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가상통화 투기 막으려면 기대수익률 낮춰야…거래사이트 폐쇄는 실효성 없고 '위헌'

이상배 기자 2018.01.25 05:00

#1866년 영국 런던의 한 거리. 붉은 깃발을 든 채 천천히 걷는 사람을 자동차 한대가 느릿느릿 따르고 있다. 기수는 맞은 편에서 다가오는 말이나 자동차를 향해 깃발을 흔들어 차량이 오고 있다고 알린다. 자동차에는 운전사와 뒷좌석의 신사 외에도 '기관원'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명 더 타고 있다. 운행 중에 기관원이 하는 일은? 딱히 없다.

1865년 제정된 '기관차량 조례'(The Locomotive Act) 탓에 벌어진 풍경이다. '적기조례'(Red Flag Act)로도 불리는 이 법에 따르면 자동차는 도심에선 시속 3km, 교외에선 시속 6km 이상으로 달릴(?) 수 없다. 또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려면 항상 운전수, 기관원, 기수 등 최소한 3명을 대동해야 한다. 이 가운데 붉은 깃발을 든 기수는 반드시 차량보다 55미터 앞서 걸어야 한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말이 차량 때문에 놀라 날뛰는 사태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하지만 사실은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마부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법에 다름 아니다. 사람보다 빨리 달릴 수 없는 자동차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게다가 3명을 항상 대동하고 다녀야 하니 인건비 부담도 적지 않았을 터다. 당시에도 논란이 컸던지 이 법은 1896년 결국 폐지됐다.

하지만 적기조례가 유지된 약 30년 동안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정체될 수 밖에 없었다. 자동차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명한 영국이 정작 자동차 산업에선 독일과 프랑스에 뒤처진 이유다.

가상통화 거래사이트를 폐쇄할 수도 있다는 정부의 엄포에 적지 않은 이들이 영국의 적기조례를 떠올린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라는 점에서다. 가상통화와 그 동전의 양면인 블록체인이 우리를 어떤 세상으로 안내할지 아직 우리는 알 수 없다. 안전한 개인간 직거래를 가능케 하는 블록체인은 경제 뿐 아니라 정치·사회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런 세상을 우리가 주도할 것이냐, 아니면 뒤처질 것이냐다.

해외에선 이미 가상통화가 창업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미국 최대 가상통화 거래소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스타트업(창업기업)들이 가상통화 이더리움을 통해 마련한 자금은 40억달러(4조3000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가상통화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는 우리나라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정부가 아무리 "블록체인 기술은 육성하겠다"고 한들 그 메시지가 오롯이 전달될리 없다.

한때 최대 50%의 '김치 프리미엄'이 붙었던 우리나라의 가상통화 가격이 거품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투기 열풍이 몰고올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생역전'을 꿈꾸며 빚 내서 가상통화에 투자한 이들이 적지 않다. 거품이 한순간에 꺼질 때 이들이 입을 피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거듭된 정부의 경고성 '구두개입'도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거래사이트 폐쇄가 해답일 순 없다. 해외 거래소 때문에 실효성이 없고, 무엇보다 위헌 소지가 크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폐쇄는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한다"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헌재가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땐 '비례원칙' 가운데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지켰는지도 따진다.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여러 방법 가운데 권리 침해가 가장 적은 방법을 선택했는지 살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덜 제약적인 수단이 없는지 △필요한 최소한의 제한인지 △필요한 범위 내의 제한인지 여부 등이 심사 대상이다. 거래사이트 폐쇄라는 극단적인 정책이 이 잣대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부가 거래사이트 폐쇄가 아닌 다른 합리적 규제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투기를 막으려면 기대수익률을 낮추면 된다. 가상통화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가 대표적이다. 교통사고를 막겠다고 자동차가 달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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