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성희롱 끝 극단 선택…서울시 공무원 유족 '승소'

[STOP! 직장 괴롭힘] 석달간 세차례 성희롱 피해 후 보복성 피해…'멘토'까지 성희롱 가담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8.02.0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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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산하 연구기관의 여성 공무원이 입사 후 석 달 동안 세 차례 성희롱 피해를 입고, 이에 항의한 뒤 직장 괴롭힘으로 의심되는 상황을 겪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해 유족이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시 산하 서울시상수도연구원 공무원이었던 A씨의 남편 B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지급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은 A씨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공단이 B씨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B씨는 서울중앙지법에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지난해 6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A씨와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고, A씨에게 집단 괴롭힘이 실제로 가해졌을 수 있다고 봤다. 법원은 "A씨가 별다른 구제조치를 받지 못한 채 성희롱 피해를 알린 사실이 노출돼 더욱 악화된 근무환경에서 근무하며 고통과 절망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원은 또 A씨의 고용주인 서울시가 피해자의 문제제기에 따라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발생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신속하고도 적절한 개선책을 실시하지 않았다며 서울시의 손해배상책임도 인정했다. 서울시는 "성희롱 예방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성희롱 고충상담 창구를 설치·운영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것만으로 A씨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이 서울시에 대해 B씨에게 보상하라고 판시한 금액은 3070만원이었다. 이는 B씨뿐 아니라 A씨의 부모에 대한 배상액까지 합친 금액이다. B씨는 항소했다. 법원이 성희롱 피해만 인정했을 뿐 직장 괴롭힘의 피해는 인정하지 않아 그에 따른 서울시의 손해배상 책임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A씨는 고된 수험생활 끝에 공무원시험에 합격, 2013년 8월 서울시상수도연구원에 연구직 공무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A씨는 근무 또는 교육훈련 성적이 나쁠 경우 면직될 수 있는 임시직이었다. 이 연구원의 최연소·최말단 직원이었던 A씨는 입사 후 석 달 동안 상사 3명으로부터 세 차례 성희롱을 당했다. 그러나 A씨는 남편 B씨에게 이런 사실을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다.

상사 C씨는 2013년 8월 회식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A씨에게 큰 소리로 "모텔에 가자"고 말했다. 다른 상사 D씨는 2013년 10월 A씨가 동석한 자리에서 다른 여성 연구원으로부터 '체련대회가 1박2일 일정이냐'는 질문을 받자 "나랑 같이 자게?"라며 여성 직원들을 희롱했다.

상수도연구원에서는 1년 미만의 신입 직원이 선임 직원과 함께 일하며 업무를 배우는 관행이 있었다. 신입 직원이었던 A씨에겐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던 E씨가 선임 직원으로 배정됐다. A씨에게 업무를 가르쳐줬어야 할 '멘토'인 E씨는 2013년 11월 한 가수의 누드사진이 유출됐다는 기사를 본 뒤 "이거 원본 있는데 보내줄까?"라며 A씨에게 노골적으로 물었다.

A씨는 용기를 내 상급자를 찾았다. 그는 "직원들에 대한 성희롱 발언과 언어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A씨는 성희롱을 한 이들의 실명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A씨는 다른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해말 A씨는 고교 동창에게 "상사가 내 초과근무 결재를 상신해주지 않는다" "상사가 내 남편이 능력이 없다고 매도한다.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소리를 치는데 왜 못 알아듣냐, 나를 무시하느냐, 너 사람 잡아먹겠다, 너 때문에 짜증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쟤 왜 저러냐'고도 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욕을 들어 눈물이 나자 그걸 본 상사가 '왜 그러냐, 왜 아무 말도 안하느냐'면서 운 것 가지고 회의를 소집해 또 뭐라고 했다"며 "다른 사람들은 'A씨 때문에 과장한테 또 욕을 먹었다'고 하면서 뭐라고 했다"고 수차례 지인에게 고충을 토로했다. 이듬해 A씨는 공무원시보 생활을 마치고 보건연구직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됐다. 그해초에도 A씨는 "상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소리지르고 짜증을 냈다"며 "출산휴가, 병가, 휴가 등으로 못 나오는 분들의 일이 대부분 나에게 온다"고 지인들에게 털어놨다.

성희롱 신고에 대한 보복 성격을 띤 직장 괴롭힘으로 볼 여지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수도연구원은 A씨로부터 성희롱 피해 사실을 보고받고도 A씨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았다. A씨는 이듬해 5월까지 서울시 힐링센터에서 12회에 걸쳐 심리상담을 받았다. 그럼에도 우울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A씨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시는 그제서야 A씨의 상사들에게 각각 정직 1개월, 정직 3개월,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남편 B씨는 아내가 직장 상사·동료들의 성희롱과 집단 괴롭힘 끝에 목숨을 끊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서울시의 성희롱 예방지침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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