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 "판사가 빨간 날 다 쉬는 거 본 적 있어요?"

설 연휴에도 출근하는 법조인들…"이제 익숙해"

한정수 기자 2018.02.15 05: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설 연휴가 찾아왔습니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이번 연휴를 기다려 왔을텐데요. 어깨를 무겁게 했던 업무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휴식을 즐기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연휴 때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법조계가 대표적입니다. 대부분의 판·검사, 변호사는 밀린 업무 탓에 연휴에도 출근을 해야 합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은 이번 연휴를 거의 반납하다시피 했습니다. 한 검사는 "설 당일 하루 빼고는 전부 출근을 해야 한다"며 "이런 일은 이제 익숙하다"고 했습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 자동차부품업체 다스(DAS) 관련 의혹 사건 등 산적한 현안이 많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인 다음달 초쯤 이 전 대통령을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위해 준비할 것들이 많겠죠.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감안해 그를 불러 한번에 많은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해 검찰은 각종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법리를 탄탄히 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사실 폭로로 꾸려진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역시 연휴를 잊은 것은 마찬가집니다. 앞서 서 검사를 불러 피해사실을 확인한 조사단은 조만간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장을 소환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수사단'도 연휴를 맞이해 각종 기록을 검토하는 등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합니다.

법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연휴 때 재판은 열리지 않지만 사건 기록을 검토하느라 쉴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판사가 빨간 날 다 쉬는 것 보신 적 있으세요"라고 물으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그는 "각 재판부 별로 사건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며 "출근을 하지 않고 마음 불편하게 쉬느니 차라리 출근을 해서 일을 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가 '비선실세' 최순실씨 등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끝내 한숨을 돌렸지만 아직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1심 선고가 남아있습니다.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는 당초 우 전 수석에 대한 선고를 지난 14일 진행하려 했지만 기록 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오는 22일로 서고 공판을 연기했습니다. 법원엔 언론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는 사건들도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하는데요. 이미 잡은 선고기일도 연기할 정도이니, 판사들이 얼마나 바쁜지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으시겠죠.

그렇다면 변호사들은 어떨까요. 로펌에 속해있는지 개인 변호사인지, 맡은 사건 수가 많은지 적은지 등에 따라 차이는 다소 있겠지만 변호사들도 편히 쉴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대형 법무법인에 근무하는 변호사는 "일거리를 차에 싣고 고향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기록을 검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는 "어차피 다 검토하지는 못하겠지만 연휴 때 조금이라도 정리를 해 둬야 연휴가 끝난 뒤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고, 돈을 많이 번다고 시기도 많이 받지만 법조인들 모두 자신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모두 알찬 연휴 보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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