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열패밀리' 검사의 성폭행은 무죄?

[이상배의 이슈인사이트] '정의의 실현'보다 '조직의 명예' 우선하는 검찰…제 식구 감싸는 '트라이벌리즘'(Tribalism)의 그림자

이상배 기자 2018.02.22 05:00

대학시절 그는 '로열패밀리'로 불렸다. 아버지는 검찰의 핵심 요직을 거쳐 고검장까지 올랐다. 그 역시 아버지를 따라 법조인이 되기 위해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사법시험 최종합격자가 발표되기 며칠 전 그는 자신의 합격 사실을 미리 알았다. 그걸 친구들에게 숨기지도 않았다.

그의 언행엔 거침이 없었다. 총학생회 선거 유인물을 나눠주는 재수 시절 친구에게 그는 "너 빨갱이냐"고 쏘아붙이고 지나갔다. 거침없는 언행은 검찰에 가서도 바뀌지 않은 모양이다.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검찰내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전직 검사 A씨가 바로 그였다.

2015년 3월 서울 한 지검의 회식 자리에서 한 여검사가 "아이스크림 맛있겠다"고 하자 B부장검사가 "나는 네가 더 맛있어 보여"라는 입에 담지 못할 망언을 했다. 이 성희롱 발언이 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되자 B부장검사는 사표를 냈다. 당시 검찰은 B부장검사를 감찰하고 징계하긴 커녕 "누가 흘렸느냐"며 이른바 '빨대'(제보자) 색출 작업을 벌였다.

이 일과 상관없어 보이던 A씨가 사표를 낸 건 그로부터 몇달 뒤다. 이즈음 검찰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A씨가 후배 여검사를 성폭행한 게 문제가 돼 사표를 던졌다는 내용이었다. 피해자는 B부장검사의 성희롱 피해자와 같은 인물이었다.

성폭행은 강간 또는 강간미수를 뜻한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검찰은 징계 절차없이 A씨의 사표를 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우려해 사건이 커지길 원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성폭행에 대해선 2013년 6월 이미 친고죄 규정이 폐지됐다. 따라서 2015년 당시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와 처벌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사표 수리 정도로 사건을 덮은 건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성폭행 사건에 연루되고도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검찰을 떠난 A씨는 대기업 법률담당 임원으로 영입됐다. 지금은 미국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이 이 사건을 조사 대상에 올려놓고 있지만,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가해자로 지목된 A씨를 국내로 데려와 조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지금도 검찰은 당시 성폭행 사건을 축소하는 데 급급하다. 한 검찰 간부는 "성폭행까진 아니고 성추행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성폭행과 성추행의 차이를 모를리 없다. 검찰 내에서 성폭행이 벌어졌다는 걸 믿고 싶지 않은 걸까? 

검찰의 남다른 '조직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조직에 대한 애정이 '거악'을 상대하는 검사들을 서로 지켜주는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때론 그 사랑이 지나친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집단이 자신들이 몸담은 집단의 이익과 명예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현상을 '트라이벌리즘'(Tribalism·부족주의)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전쟁사학자 존 키건(John Keegan)은 저서 '세계전쟁사'를 통해 국익에 가장 충실해야 할 군인들마저 '트라이벌리즘'에 빠져있다며 그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키건은 "영국 군대에서 자신들의 부대의 가치를 훼손하는 말은 절대로 입 밖에 낼 수 없다"며 "그들의 행동의 동기는 계급장이나 돈이 아니라 오직 부대 내에서의 평판과 신임"이라고 했다.

트라이벌리즘이 문제가 되는 건 집단의 이익이나 명예가 그 상위의 가치와 충돌할 때다. 개별 부처가 국익보다 해당 부처의 이익을 우선하는 '부처 이기주의'가 대표적이다. 검찰이 자신들의 본령인 '정의의 실현'보다 '조직의 명예'를 더 우선시한다면 '공익의 수호자'로서 자격이 없다. 성폭행을 저질러도 제 식구라는 이유로 아무런 징계도 처벌도 내리지 않는 검찰을 어떤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죄가 있다면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게 검찰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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