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걸려 입찰 막히면 회사 쪼개면 된다고?

12년차 공정거래전문 변호사가 말해주는 '공정거래로(law)'

백광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2018.02.20 05:2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A사는 입찰담합을 하였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 받은 후 해당 발주기관들로부터도 부정당업자 제재처분(6개월 간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받았다. 그 로 인해 A사는 6개월 간 공공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위기에 빠지자, 궁여지책 끝에 A사의 공공입찰 사업부문을 분할하여 B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B사는 조달청이 발주하는 공공입찰에서 낙찰을 받았고 계약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달청이 B사에게 낙찰을 무효처리하겠다고 통지했다. 이유는 B사가 분할되기 전 A사에 대해 이미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이 내려졌고 그 처분의 효력이 분할신설된 B사에게도 미친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경우, B사는 조달청에게 자신이 낙찰자임을 주장하며 원래대로 계약체결을 진행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 분할 전 회사의 공·사법상 권리의무, '그 성질상 이전을 허용하지 않는 것' 외에는 신설 회사에 승계

원래 존재하던 회사가 영업 중 일부를 분할하여 신설회사에 출자하고 분할 전 회사는 나머지 영업을 가지고 존속하는 방식을 단순분할이라 한다. 단순분할의 경우 분할 전 회사가 원래 가지고 있던 법인격은 분할 후의 존속회사에서 그 동일성이 유지된다. 반면, 분할에 의하여 설립되는 회사는 원래 회사의 법인격을 승계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결국 B사는 A사의 법인격을 승계하지 않으며 두 회사는 어디까지나 별개의 법적 주체가 된다.

상법 제530조의10에서는 분할신설회사는 분할계획서와 정하는 바에 따라 분할 전 회사의 권리의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분할에 의하여 설립되는 회사는 분할계획서에 의해 특정된 채무만을 인수할 뿐이며, 분할에 의해서는 포괄승계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합병의 경우 법인격이 합일되어 소멸회사의 모든 책임을 존속회사가 포괄승계하는 것과 대비된다.

상법 제530조의10에 대한 해석에 대해 대법원은 분할계획서에 정하는 바에 따라 분할 전 회사의 공·사법상 권리의무는 그 성질상 이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신설되는 회사에게 승계된다고 판시하면서, ‘그 성질상 이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예로 일신전속적인 권리의무(예컨대 공동수급체 조합원의 지위)를 제시했다. 

따라서, 위 사안의 경우 분할 전 A사의 과거 법위반행위(입찰담합)로 인해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의 처분사유가 구비되어 있고, 그 법위반행위와 관련된 사업부문이 B사로 이전되는 것으로 분할계획서에 정하고 있는 경우 A사에게 발생하는 부작위의무(입찰참가 금지)가 일신전속적인 의무인지 여부가 쟁점이라 할 것이다.

◇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분할 전 회사 법위반행위 이유로 신설회사에 제재처분 부과 허용 안돼


분할 전 회사의 법위반행위를 이유로 구체적인 제재처분(예: 과징금)이 부과되기 전까지는 단순한 사실행위만 존재할 뿐, 그 제재처분과 관련하여 승계의 대상이 되는 어떠한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고,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신설회사에 대하여 분할 전 회사의 법위반행위를 이유로 신설회사에게 제재처분을 부과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

따라서, 분할 전 B사의 법위반행위를 이유로 신설회사인 A사에게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을 부과할 수는 없다. 참고로, 위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후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분할 전 회사의 법위반행위를 이유로 신설회사에게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다.

◇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은 대물적 처분 아닌 대인적 처분···회사 분할 시 승계 대상 안돼

이와 달리, 분할 전 회사에게 이미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이 내려져 입찰참가자격 제한이라는 공법상 의무가 발생한 경우, 이것이 사법상의 채무와 마찬가지로 분할계약서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분할신설회사에게도 승계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즉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의 법적 성격이 대인적 처분인지 대물적 처분인지가 쟁점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은 설비·인허가 등 사업자산에 대해 내려지는 대물적 처분이 아니라 공법상 의무를 위반한 당사자에게 일신전속적으로 부과되는 대인적 처분으로서 그 효과가 분할신설회사인 A사에게는 승계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급심이긴 하지만 법원 역시 신설회사가 분할 전 당연히 그에 대한 제재처분까지 승계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그러한 처분의 효력이 승계되기 위해서는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있거나, 혹은 해당 처분의 법적 성격이 대인적 처분(사업자 개인의 자격에 대한 제재처분)이 아니라 대물적 처분(사업의 물적 설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법리를 설시하였다.

참고로, 국가계약법은 앞서 본 공정거래법과 달리 부정당업자와 대표이사가 동일한 다른 회사에 대해서도 입찰참가자격 제한의 효력이 미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분할신설회사나 영업양수인 등에 대해 그 효력이 승계된다는 규정은 따로 두고 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전제 하에 법원은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의 법적 성격을 ‘대인적 처분’으로 규명하였는바, 그 근거로서 △ 처분의 원인이 되는 담합행위는 입찰사업을 수행하는 물적 설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이 이루어지는 사업자의 개인적인 행위인 점,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사업자의 지위에 대한 대인적인 제재일 뿐이고 이로 인해 설비를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관련 인ㆍ허가가 취소되는 등 대물적인 제재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 점 등을 제시하였다.

즉, 법원은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은 대물적 처분이 아닌 대인적 처분으로서 회사 분할 시 승계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B사는 조달청에게 자신이 낙찰자임을 주장하며 원래대로 계약체결을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과징금납부명령 신설분할회사에도 승계된다'는 공정거래법 규정…국가계약법에도 명문규정 마련 필요

공공입찰이 대부분의 매출을 차지하는 사업자로서는 입찰담합을 한 경우 발주기관들로부터 내려지는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은 사실상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최대 2년까지 개점휴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고민과 대책을 세울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앞 선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부득이하게 분할로써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회피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래서 신설분할회사에서 그 처분의 효과가 승계되어야 한다는 일부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려 섞인 정책론만으로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이 신설분할회사에도 승계되어야 한다는 것은 행정법의 기본원칙에 반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는 결국 입법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즉 공정거래법에서 과징금납부명령의 경우 제재처분의 효과가 신설분할회사 또는 해당 사업부문의 양수인에게 미친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국가계약법상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에 대해서도 이러한 승계 근거규정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위와 같은 우려가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법무법인(유한) 바른의 공정거래팀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백광현 변호사(연수원 36기)는 공정거래분야 전문가로 기업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공정거래 관련 이슈들을 상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공정거래법 실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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