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일반

[친절한 판례氏] 사기도박은 '사기'일까? '도박'일까?

대법 "사기도박은 도박의 우연성 결여…사기죄만 성립"

황국상 기자 2018.02.20 05:05
영화 '타짜' 포스터

"손은 눈보다 빠르다." 사기도박을 일삼는 '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타짜'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 주인공을 비롯한 '꾼'들은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일 때까지 '수련'을 거쳐 얻은 화려한 손기술로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속칭 '타짜'들을 동원하거나 몰래카메라 등 장비를 동원해 '이길 수밖에 없도록 설계한 도박'을 일컬어 사기도박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기도박은 사기죄에 해당할까? 아니면 도박죄에 해당할까? 그에 대해 답을 내린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1년 1월13일 선고, 2010도9330)가 있어 소개한다.

피고인 A씨는 지인들과 수차례 도박을 하다가 수백 만원에 이르는 판돈을 고스란히 잃고 말았다. A씨는 돈을 벌기 위해 지인 B씨를 찾아가 "사기도박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A씨는 B씨 등과 함께 도박장으로 쓰이던 모텔방 천장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옆방에는 모니터를 설치하는 등 방법으로 사기도박장을 설계했다. 일당 중 한 명이 천장 몰래카메라를 통해 상대방의 패를 훔쳐보고 이를 A씨에게 알려줘 A씨가 이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마련한 것이다. 

A씨는 피해자들이 의심을 하지 않도록 1시간 가량은 정상적으로 화투 도박을 진행했지만 이후 4시간 동안은 미리 준비한 장비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속였다. A씨가 사기도박에 참여한 피해자 3명에게서 딴 돈은 700만원이 넘었다.

검찰은 A씨를 사기죄와 도박죄 등 2가지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처음 1시간 동안 정상적으로 화투를 친 행위에는 도박혐의를, 미리 준비한 몰래카메라 등을 활용해 도박을 진행한 행위에는 사기혐의를 각각 적용한 결과였다. 

1심과 2심은 이들 혐의 모두를 유죄로 보고 징역 4월에 벌금 200만원형을 선고했다. 형법에 따르면 남을 속여 재산을 갈취한 사기 행위는 10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도박 행위에 대해서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A씨에 적용된 혐의 중 사기죄에 대해서만 유죄로 보고 도박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씨 등이 사기도박을 숨기기 위해 얼마간 정상적으로 도박을 했다더라도 이는 사기죄의 실행행위에 포함되는 것"이라며 "A씨의 행위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기죄만 성립하고 도박죄는 따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A씨 등은 사기도박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그러한 의도로 피해자들에게 도박에 참여하도록 권유한 때 또는 늦어도 그 사정을 알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도박에 참가한 때 이미 사기죄의 실행에 착수했다고 할 것"이라며 "원심은 사기죄 외에 도박죄가 별도로 성립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유죄로 인정해 사기도박에 있어서 실행의 착수시기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도박이란 2인 이상이 상호간 재물을 걸고 우연한 승패에 따라 그 재물의 득실(得失)을 결정하는 것"이라며 "사기도박처럼 도박 당사자의 일방이 사기의 수단으로써 승패의 수를 지배하는 경우에는 도박의 요건인 '우연성'을 결여한 것으로 사기죄만 성립하고 도박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어 "사기죄는 재물을 갈취하고자 하는 의사로 속이는 행위를 개시한 때에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사기도박에서 사기적 방법으로 판돈을 갈취하려는 자가 상대방에게 도박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는 등 속이는 행위를 개시한 때에 실행의 착수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조항
형법
제40조(상상적 경합)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

형법 
제246조(도박, 상습도박)
① 도박을 한 사람은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② 상습으로 제1항의 죄를 범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47조(사기)
①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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