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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른 '간호사 태움'…'따돌림·비협조' 처벌 사각지대

[STOP! 직장 괴롭힘] 폭언·욕설·폭행 외 '직장 괴롭힘'은 처벌 못해…민사상 손해배상도 회사 '입단속'이 걸림돌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8.02.20 14:21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서울 대형병원의 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두고 경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그 배경에 간호사 사이의 직장 괴롭힘 관습인 이른바 '태움'이 있었다는 유족 측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만약 '태움'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할까?

태움이란 간호사 간 위계를 바탕으로 한 직장 괴롭힘을 지칭하는 은어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됐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직장 괴롭힘은 왕따나 과중한 업무 부여 등 직장 내에서 노동자의 신체·정신적 건강을 침해해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 전반을 말한다.

◇폭언·욕설·폭행 외 '직장 괴롭힘'은 처벌 못해

간호사들이 말하는 태움의 형태는 △직접적인 폭언·욕설 △신체적 폭행 △업무 비협조 △따돌림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교묘한 형태의 태움에 대해선 형사처벌에 한계가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법령상 행위유형이 규정된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해서다. 

예컨대 다른 간호사 등 다중 앞에서 통상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의 범위를 넘어 굴욕감, 모욕감을 주는 욕설 등을 하거나(모욕·명예훼손 등),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적인 유형력이 가해진 경우(폭행죄)에는 처벌이 가능하다. 또 집단·조직문화라는 이름으로 업무 외의 의무없는 일을 강요하는 경우에도 강요죄가 성립할 수 있다. 

강대형 법무법인 현 변호사는 "(태움) 가해자에게 적용 가능한 처벌조항은 형법상 명예훼손 또는 모욕, 폭행, 강요죄 정도가 될 것"이라며 "기합, 이른바 '얼차려'나 뺨을 때리는 것, 정강이를 차거나 차트로 머리를 찍는 행위 등은 폭행에 해당하고, 상습성이 인정되거나 위험한 물건 등을 사용한 경우에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상 가중처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합장이 부하 직원에게 지목하며 "횡령을 했다"고 주장하고,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꼴값 떤다", "병X", "지X한다" 등 폭언을 하는 등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갖은 불이익을 가해 명예훼손 및 모욕 행위로 처벌받은 이른바 '직지농협 사건' 등 판례도 있다.

문제는 직장 내의 따돌림이나 업무 비협조 등 법령에 '규정되지 않은' 태움 행위다. 이러한 행위는 형사처벌이 어렵다.

김동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태움은 일종의 직장 괴롭힘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직장 괴롭힘의 법적 정의나 요건이 아직 없고, 이에 대한 예방의무나 금지의무를 규정하는 법률도 없어 국내에서는 처벌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컨대 신입 간호사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채 환자를 담당하도록 하고, 실수를 강하게 지적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김한나 서울의료원 변호사는 "이미 군 형법상으로도 직권남용 및 위력행사를 통한 학대·가혹행위를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면서 "간호사 등 조직문화가 강하게 자리잡은 직업군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처벌 규정을 두고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사상 손해배상도 어려워…회사 '입단속' 걸림돌

결국 피해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법적 대응은 민사상 불법행위를 이유로 사업주와 가해자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수준에 그친다. 가해자의 불법행위로 인해 정신적 혹은 신체적·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만큼 그를 고용한 사업주와 가해자(피용자)가 연대해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또는 태움으로 인한 신체·정신적 질환을 앓게 된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청구도 구제수단으로 쓰인다.

그러나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증거 부족 때문이다. 한 노무사는 "(태움)사건이 공론화되면 회사 차원에서 가해자는 물론 구성원들 전체에 대한 입단속에 들어가는데, 평소 증거를 수집해놓지 않았을 경우 법원에서 직장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받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간호사 A씨와 그의 부모는 "교대근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고, 폭행 가해자가 다른 병동으로 전보조치되자 가해자의 동료 간호사들이 인신공격을 하거나 협박을 하는 등 사직을 강요했다"며 수간호사 등과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A씨는 지난 2015년 승소했지만 1심 법원은 폭행 사실만 인정했을 뿐 나머지 '태움' 행위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며 수백만원의 손해만 인정했다. 이 사건은 항소심에 이르러 조정이 이뤄졌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경력 1년 미만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3.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 3명 가운데 1명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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