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판도라 상자'되나…셀프조사 그칠 우려도

자체 조사·無선례에 우려도…"성역 건드리면 안 돼" vs "강제 수사 필요"

이보라 기자 2018.02.25 14:59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있는 대법원 깃발과 국기./사진=뉴스1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까.”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에 대한 3차 조사를 진행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관련 인사들의 컴퓨터 비밀번호를 확보해 재조사에 나서면서 문제의 실마리가 해결될 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조사단 중 외부 인사가 없어 감시가 어려운 데다 지금까지 사법부 자체 비리에 대한 조사 선례가 없다는 점에서 ‘셀프조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사단은 오는 26일부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의혹을 받는 인사들의 컴퓨터 비밀번호를 얻어 재조사에 들어간다. 조사단은 이미 이들의 컴퓨터 저장매체 등을 확보했으나 비밀번호를 알지 못해 조사에 차질을 빚었다.

재조사 대상은 임 전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전 기획조정실 심의관 2명 등 관련 인사 4명이 사용한 컴퓨터 4대다. 조사단은 이들로부터 컴퓨터 등 저장매체에 대한 조사 동의를 받고 그간 추가조사에서 열어보지 못한 760개의 비밀번호 설정 파일에 대해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대한 포렌식 조사도 26일부터 진행된다. 조사 범위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설립된 2011년 11월부터 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을 마친 지난해 4월까지다.

앞서 법원 추가조사위원회는 과거 법원행정처가 위법하게 법관의 동향을 파악하고 성향을 분석한 문건을 다수 발견했다. 하지만 일부 컴퓨터에서 비밀번호가 걸린 파일 760건은 조사하지 못했다.

확인하지 못한 파일 중에는 ‘(160408)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160315)국제인권법연구회대응방안검토(임종헌수정)’ ‘(160310)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인사)’ ‘(160407)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등 의심스러운 내용이 다수 발견됐다.

컴퓨터에 대한 재조사가 본격화됐지만 의혹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조사단 중 외부 인사가 없어 감시가 어려운 탓에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사단은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단장으로 노태악 서울북부지방법원장과 이성복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수원지법 부장판사), 정재헌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지법 부장판사급), 구태회 사법연수원 교수(판사), 김흥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고법 부장판사급)로 모두 사법부 내부 인사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법원 내부 문제는 원칙적으로 법관들, 법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또 현재까지 사법부에 내부 조직적 비리에 대한 조사 선례가 없는 것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면 검찰 등 수사기관의 개입 가능성도 열어둬야 하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검찰 내부에서는 “사법부는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성역이라는 인식이 있기에 검찰 수사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다만 검찰 측은 “법원이 기술 지원을 요청해올 경우 언제든 손을 빌려줄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가 신속히 적폐를 청산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외부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불가침 영역인 사법부의 자체 해결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서강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며 “법원이 스스로 조사하지 못한 부분을 검찰의 강제 수사를 통해 열어야 한다. 법원 자체적 노력만으로 어렵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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