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선 안 될 사진, 봐선 안 될 것들

[Law&Life-'내 손 위의 악마' 사이버성폭력 ①] 성인 남녀 14%, '사이버성폭력' 피해 경험…"신체접촉 없어도 강제추행"

김종훈 기자 2018.03.09 05:01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미투'(Me 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가운데 대중음악가 남궁연씨를 놓고 불거진 의혹은 여느 미투 사건들과는 조금 달랐다.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뜻하는 성추행 의혹이 다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피해 여성은 남궁씨가 자신에게 누드 사진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CG(컴퓨터 그래픽)에 쓰겠다는 게 이유였다고 했다. 이 여성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나를 성 노리개로 이용했다는 게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남궁씨는 이 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상대방에게 나체 사진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신체부위 등을 담은 성적인 사진을 상대방에게 보내는 경우다. 음담패설 등 야한 표현도 함께 전송된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 등이 주로 이용된다. 

성폭력 피해를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성범죄인 '사이버성폭력' 사례도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유명인들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 실생활에서 사이버성폭력은 만연해 있으며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여성계는 지적한다. 법조계에선 사이버성폭력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도록 처벌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 대법원 "신체접촉 없어도 강제추행"

6일 여성가족부의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8월 성인 남녀 7200명 가운데 '컴퓨터나 휴대폰 등을 통해 원치 않는 음란물을 전송받거나 성희롱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라고 대답한 비율은 13.6%에 달했다. 고의적인 신체접촉(10.7%)의 경우보다 많다.

다른 사람에게 그들이 원치 않은 음란물이나 메시지를 보내는 게 사이버성폭력의 주된 유형이다. 이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에 따라 통신매체이용음란죄가 적용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남궁씨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의 경우처럼 피해자에게 나체와 같은 성적인 사진을 보내라고 강요하는 유형의 성폭력도 있다. 이에 대해선 통신매체이용음란죄가 아닌 강제추행죄가 적용될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선고한 이모씨(28)의 사건(2016도17733)에서 직접적인 신체접촉이 없었어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판례를 제시했다. 이씨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피해자들을 상대로 "몸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계속해서 신체 사진을 받아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이는 피해자들을 도구로 삼아 피해자들의 신체를 이용해 그 성적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며 "이씨가 직접 행위하지 않았다거나 피해자들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수치심' 느껴야 범죄? "수치심은 잘못한 사람이 느끼는 것"

사이버성폭력 사건에서 법원이 피해를 주장하는 쪽의 증언만 갖고 판결하는 건 아니다. 피해 주장이 있다고 해도 사건의 전후 사정을 따져볼 때 성폭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양쪽이 가까운 남녀 사이였다거나 재판부가 보기에 성적 수치심이 들었던 상황은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는 사례가 있다. 

일례로 일방적으로 자신의 성기 사진과 음란동영상을 상대방 휴대폰으로 전송해 기소된 A씨의 사건이 있다. 피해여성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라고 진술했으나 1심 법원은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여성이 A씨와의 관계를 끊지 않고 성관계를 하기도 했던 점, 음란물을 전송받고 8개월이 지난 후에야 고소장을 접수한 점 등이 이유가 됐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런 판단은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아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는 "일반 성폭력에 있어서도 친밀한 관계나 지인 관계 사이의 사건은 오히려 가중요소로 고려된다"며 "이런 것을 무죄 판단의 요소로 고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을 성폭력 사건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수치심이라는 것은 잘못한 사람이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성폭력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삼는 것은 굉장히 맞지 않다"며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 불쾌감 등 여러가지일 수 있다. 수치심이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가 구성요건이 되도록 법률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권력구도상 '갑을' 관계에 있었을 경우 피해자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목표지향적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참아야 한다',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우리나라는 남성 중심에 노력을 강조하는 문화다 보니 이런경향이 더 심하다"며 "(성적인 요구를 받았을 때) '다 이런 걸 거쳤을 것'이라고 착각하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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