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부가 성폭행을…" 신고했더니 '합의된 관계'라는 법원

[그일, 그 후] 법원, '가해자 사과' 녹취록에도 '이혼하려는 이모와 짠 것 아니냐' 의심

박보희 기자 2018.03.12 05: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법원은 이모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말을 의심했다. 대신 합의 아래 조카와 성관계를 했다는 이모부의 말을 믿었다. 법원은 이모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영씨(가명)는 지금도 이모네 집에 놀러갔던 2012년 봄날을 후회한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돼 밤에 혼자 집에 있는 것이 무서웠던 지영씨는 자신의 집에 와 며칠 쉬다가라는 이모의 제안에 이모집을 찾았다. 

교회에서 돌아오던 길, 이모부의 트럭 안에서 기억하기 싫은 '그 일'이 일어났다.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 이모네 집에 왔던 지영씨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다음날 이모네 집에서 나온 뒤 이모네와 왕래를 끊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없던 일로 묻어두고 싶었다. 3년 후 이모부가 지영씨의 집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성폭행 뒤 갑자기 집에 찾아온 가해자…5년만에 고소 결심"

지영씨 측은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자 이모부가 서 있었다"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했지만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찾아와 문 앞에서 '나야 문열어' '널 먹으러 왔다'는 식의 말을 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지영씨는 결국 엄마에게 이를 알렸다. 지영씨 측은 "집이 어려워 어렸을 때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다 일찍 독립해 엄마에게 이런 일을 털어놓을 정도의 사이가 아니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관계가 조금씩 회복됐다. 오랜만에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힘들었던 일을 얘기하다 이모부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얘기까지 털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딸의 말을 들은 엄마는 이모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딸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는 엄마의 호통에 이모부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날 지영씨는 이모부를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지영씨의 진술과 엄마와 이모부 간 통화 녹음 등을 들은 수사기관은 곧바로 이모부를 성폭행 혐의로 기소했다. 성폭력 사건은 신고도 어렵지만 재판을 받는 것 역시 어렵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 범죄 기소율은 40%에 불과했다. 10건 가운데 4건만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6건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법원에 가 보지도 못하고 사건이 끝난다. 

검찰은 지영씨의 진술과 녹취록 등을 근거로 이모부를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혐의로 기소했다. 사건을 담당한 A변호사는 "통화 내용만 들어봐도 이모부의 성폭행은 명확했고, 검찰 역시 기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항이 부족했다는 법원…옷 벗겨진채 도와달라 소리쳐야 했나"

"미안하다"던 이모부는 재판이 시작되자 "피해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1심 법원은 지난해 12월 이모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행을 당하던 중 트럭 옆으로 사람이 지나갔는데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지영씨는 "성폭행을 당하는 중이었고 당시 상황이 너무 무서워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소리치는 것 만으로 위급한 상황을 알릴 수 있었는데 피해자의 태도를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A변호사는 재판부가 피해자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변호사는 "이미 옷이 벗겨져 성폭행을 당하고 있었고, 차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니 가해자가 조용히 하라고 한 상황"이라며 "이때 사람을 소리쳐 부르는 것이 피해자 입장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재판부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진술의 신빙성 역시 지적했다. 지영씨가 트럭 안에서 어떤 자세로 성폭행을 당했는지에 대해 "(수사 기관과 법정에서 한 진술이 달라져)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A변호사는 "피해자가 법정에서 미숙하게 답변하긴 했지만 수사 기록과 결국 같은 내용"이라며 "법정에 처음 서보는 피해자는 긴장되서 질문을 잘못 이해하거나 이미 수사기관에서 한 얘기라 판사가 안다고 생각해 법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건너뛰어 말하기도 한다. 피해자 진술에 의문이 생기면 추가로 질문해 확인할 수 있는데 별다른 확인없이 넘어가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저항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지영씨 측은 "이모부가 갑자기 어깨를 밀어눌러 눕힌 뒤 3~4분 남짓 성폭행했다"며 "밀어내려했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워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행사한 물리력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인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미안하다' 녹취록도 '성폭행 사과 아닐수 있다'"는 법원

피해자 진술에는 조목조목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재판부는 가해자 입장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검찰 기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이모부의 사과가 담긴 녹취록'에 대해 재판부는 "수차례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조카와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 대한 도의적인 사죄와 반성의 의미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왜 5년이 지나고 나서야 고소를 했느냐'는 것도 논쟁거리가 됐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왜 이제야 말하느냐"고 물었다. 재판부는 스스로 답도 찾아냈다. '지영씨가 이모의 이혼을 유리하게 해주기 위해 이모부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해 놓고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고소 당시 이혼 소송 중이던 이모부는 지영씨가 경찰서에 고소를 한 당일, 곧바로 1억원 남짓의 집을 이모에게 주며 이혼 등에 대한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에는 "강제추행죄로 고소를 당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엄마를 설득해 합의가 성사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이모가 이모부의 재산을 받기내기 위해 조카인 지영씨가 고소를 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지영씨 측은 "성폭행 이후 이모 측과 왕래를 끊어 이혼 소송 중인 것도 몰랐고, 합의서 내용을 알게된 후 이모에게 물어봤지만 이모는 '내 이혼과 네 사건이 무슨 상관이냐'며 의아해했다"며 "모두 처음 듣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또 "합의서까지 쓴 이모부는 이혼을 안 하겠다고 말을 바꿔 아직도 별거 상태로 혼인을 유지하고 있다. 이미 집을 담보로 수천만원의 빚을 얻어써 이모는 오히려 빚을 갚아야 할 처지다. 전재산을 줬다고 하지만 사실 준 것은 없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이혼소송을 몰랐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고소 이유를 피해자 진술대로 믿기 어렵다"며 지영씨 측 주장을 믿지 않았다. 

A변호사는 "합의서 내용은 실제 성폭행이 있었고 잘못을 했으니 합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쪽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설사 이혼 때문에 고소했다는 의심이 들더라도 성폭행이 성폭행이 아닌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니 구분해서 판단해야 할 일"이라며 "서로 다른 사건을 연결지어 피해자의 고소 이유를 의심하는 것은 결국 가해자 입장에서 정답을 정해놓고 본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왜 5년이나 지나서 신고를 했느냐,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느냐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이 담긴 판결"이라며 "좀 더 피해자 입장에서 고민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1심 재판부의 결론은 '조카가 이모부와 합의해 트럭 안에서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지영씨는 항소했다. 그는 현재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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