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 죽기 전에야 수급자 인정…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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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수 변호사(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2018.03.11 16:53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남편이 쓰러져 병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그 때에도 전화가 왔어요. 왜 일하지 않느냐고. 제가 말했죠. 우리 남편이 어떻게 되었는지 병원에 직접 와서 보시라고.”

지난 2014년, 수원 권선구에 사는 곽씨의 남편 최씨는 청소부로 일하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최씨는 대동맥류란 중증질환을 앓으면서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 대동맥에 인공혈관을 끼워 넣는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일상적인 생활은 가능했지만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찼고, 조금만 무리해도 쉽게 피로를 느끼는 상태가 되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그는 수년 간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2012년 근로능력평가가 국민연금공단의 업무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근로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 국민연금공단의 판정에 따라 근로능력 있는 사람이 된 최씨는 일을 해야 했다(현행법상 수급신청자가 18세에서 65세사이라면 근로능력평가를 통해 근로를 이행할 것을 조건으로 하여 수급자격을 부여한다. 65세 이상의 노인은 근로무능력자로 보기 때문에 근로능력평가를 따로 하지 않는다). 최씨는 수급을 받기위해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보려 애썼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 일한지 3개월 만에 쓰러져 사망에 이르렀다.

곽씨는 남편에게 일할능력이 있다고 판정한 국민연금공단에 그 판단의 근거를 요구했지만 묵살 당했고, 결국 지난 2017년 8월 남편에게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내린 국민연금공단과 조건부 수급처분을 한 수원시 권선구청을 상대로 남편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사건’이라고 명명되었다.

국민연금공단의 근로능력평가와 조건부 수급자

어떻게 수년간 근로능력 없던 최씨는 갑자기 근로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과거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근로능력평가는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였으나, 업무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위해 2012년 국민연금공단으로 이관되었다. 국민연금공단은 근로능력 평가를 위해 수급신청자로부터 제출받은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와 최근 2개월간의 진료기록부를 토대로 의학적 평가를 내린다. 

문제는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의 문항이 수급자의 근로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지나치게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씨 역시 과거 대동맥류라는 중증질환을 앓았고 2차례나 대규모 수술을 받았지만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에는 최씨의 과거력을 나타낼 수 있는 항목이 없었다. 최씨의 담당의가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에 “안정 시에는 무증상인데 계단을 오르는 등의 신체활동 시에는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한다”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하였지만, 국민연금공단의 의학적 평가 과정에서 담당전문의의 소견은 묵살되었다. 

그 이유는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와 함께 제출된 진료기록부에 호흡곤란 증상과 관련된 내용이나 그와 관련된 약물처방이 없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단지 최근 2개월간의 진료기록부 내용만으로 근로능력 유무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정확하고 납득할 만하게 이루어졌을지 의문이다. 높은 의학적 평가를 받은 최씨가 병원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공단은 곽씨의 요청에 따라 병원에 누워있는 최씨를 확인한 후 활동능력평가 점수를 낮추어 근로능력 없음 상태로 만들었다. 당시 담당자는 최씨에게 낮은 활동능력평가 점수를 부여하기 위해 알콜중독 항목에 체크했다. 쓰러져 병원에 누워있던 최씨는 술을 한모금도 입에 댈 수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허술한 평가체계를 통해 국민연금공단은 연간 20만 건의 근로능력평가를 2분에 한 건 꼴로 결정하고 있었다(시사기획 창, 어느 청소부의 죽음, 2015). 질병으로 인해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노동을 강제당하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지 여부가 그 2분 안에 결정되는 것이다.

근로능력평가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지난 1999년 생활이 어려운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제정되었지만, 수급자 선정 과정에서 부양의무자기준과 근로능력평가제도를 적용함으로써 본래의 취지가 크게 훼손되었다. 근로를 조건으로 수급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강제노동에 다름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동연계 복지’라는 기조에 따라 근로능력평가제도를 운영고자 한다면, 최소한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는 공정하고 정확한 근로능력평가이고, 둘째는 대상자의 건강상태 및 실제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인 자활계획의 수립이다.

국민연금공단이 근로능력평가를 시작한지 5년이 넘었지만 고인이 된 최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그 업무를 전문적으로 공정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의 항목을 실제 근로능력여부를 판정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화하고, 현재와 같이 평면적인 진료기록부 검토가 아닌 종합적이고 다면적인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업무지침을 개선해야 한다. 평가 과정에서 수급자가 자료제출과 더불어 공단 자문의와의 면담을 신청할 수 있도록 신청권을 부여할 필요도 있다. 

또, 국민연금공단은 이미 내려진 근로능력 평가 결과에 대해 수급자가 이의신청하려면 추가적인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이의신청을 받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근로능력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은 조건없이 접수하고, 이의신청 건에 대해서는 공단 내의 자문의가 아닌 제3의 기관을 통해 공정하게 판정 받을 필요가 있다.

곽씨는 결국 법원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근로능력판정 업무상의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이 소송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이 현재 제도 운영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또 다른 최씨가 발생하지 않도록 변화되기를 바란다. 이제 다가올 3월 13일에 진행될 이 소송에 대한 첫 변론기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배진수 변호사는 서울시복지재단 내에 있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국민기초생활수급제도 개선, 위기청소년 성매매 예방 등 복지 분야의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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