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성폭력 무고죄, '최고형' 처벌하자고?

[서초동살롱] 고소 않고 폭로만 하면 '무고죄' 안돼…'허위 주장' 또는 무분별한 '마녀사냥' 지양해야

김종훈 기자 2018.03.19 05:00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성범죄는 문명에 반하는 야만의 범죄가 맞습니다. 관련 법규를 강화해 유죄 시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일정 형기 이상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무고의 경우 민사소송과 더불어 무고죄에 더해서 주장하는 성범죄의 최고형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13일 한 변호사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미투'(Me too) 운동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람이 없도록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무고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는데요. 남성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이게 맞는 말이지" "배우신 분" 등 지지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이 댓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성범죄 사건 처리에 대한 남성들의 불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확인없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단 이유만으로 매장당하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하소연입니다. 최근 법무부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에 대한 무고나 명예훼손 고소 사건 등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권고안이 나오면서 불만은 더 커졌습니다. 정말 억울한 남자들은 그럼 어디에 호소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는 것이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무고죄 처벌을 대폭 강화하면 남성들의 불만이 해결될까요? 법조계의 생각은 다릅니다.

우선 무고죄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습니다. 무고죄는 형법 제156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형사처벌 또는 징계의 목적·허위사실·신고'라는 3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미투 운동처럼 성폭력 피해 주장을 공론화하는 게 무고죄에 해당할까요? 미투 운동은 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언론을 통해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사기관에 고소장까지 접수하는 사례는 매우 적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고 피해사실만 주장하는 것은 무고죄 적용대상이 아닙니다. 미투 운동 중 상당 사례는 무고죄와 별로 상관이 없는 문제라는 겁니다.

또 트위터 내용처럼 무고죄 처벌 수위를 올릴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큽니다. 실제로 성폭력를 당했어도 역고소가 무서워 피해를 숨기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죠.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성폭력 범죄의 신고율이 10%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고죄 형량이 올라간다면 신고율은 더 낮아질 공산이 큽니다.

성폭력 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정말 많은 피해자들이 무고죄를 걱정한다. 실제로도 무고죄로 맞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많다"며 "성범죄 피해자인데 무고죄로 또 고소를 당하는 건 이중의 고통이다. 형사절차를 밟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무고죄를 최고형으로 다스리자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 같다"고 했습니다.

그럼 무고죄 대신 명예훼손죄 형량이라도 성폭력 범죄만큼 올려서 '가짜 성폭력 공론화'를 엄벌하자는 건 어떨까요? 일단 성폭력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무고죄 형량 강화 주장과 비슷한 비판을 받게 될 겁니다. 

이는 법률적으로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무고든 명예훼손이든 성폭력 사건과 관계없는 다른 유형의 사건도 많은데, 성폭력 관련 사건을 엄벌한다는 이유로 형량을 올리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한 판사는 "억울한 사람 만드는 것도 정말 나쁜 일이지만 성폭력 범죄와 동일선상에 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법원은 무고와 명예훼손죄를 구속영장을 발부할 정도로 엄중히 다루고 있습니다. 또 민사소송으로도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짜 미투에 본때를 보여주자'는 식의 논의는 부적절하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었습니다.

다만 허위사실 주장이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한 무분별한 마녀사냥은 지양해야겠죠.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이 주로 SNS를 통해 이뤄지다 보니 본질이 흐려지고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까 걱정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곽 교수는 "'이 참에 너 좀 당해봐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흔들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심리도 더러 보이는데 이러면 안 된다"며 "취지가 좋은 만큼 성숙한 미투 운동이 돼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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