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노동법] 임금피크제, 이사회 안 거치고 노사 합의만 했다면?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3.21 05: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임금피크제는 특정 나이가 된 직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비율로 삭감하면서 고용을 유지하는 제도입니다. 근로자 입장에선 더 오래 일하는 대신 일정 부분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때론 임금피크제 도입 절차가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참고가 될만한 사례를 하나를 소개합니다.

A공공기관과 노동조합은 2006년 10월 ‘임금피크제 및 공모시행제 노사협약’을 체결했습니다. A공공기관은 보통의 임금피크제와 달리 만 58세가 된 직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비율로 삭감하는 대신 정년 후 2년간 고용을 연장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 협약에서는 A공공기관에 근무하던 직원이 만 58세가 되면 그 다음 달부터 의무적으로 임금피크제가 적용됩니다. 임금피크제 전환 직전 연도 연봉액을 기준으로 매년 일정 비율(1년차 10%, 2년차 20%, 3년차 30%, 4년차 40%)의 임금이 삭감되지만 그 대신 정년 후 2년간 고용이 연장됩니다. 이 기간 동안은 매년 연봉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임금으로 받게 되죠.

그런데 A공공기관은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아 문제가 됐습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습니다. 노사 합의를 거친 이 협약이 이사회 의결 없이도 유효한지가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됐습니다. 이 사건에서 임금을 청구한 직원은 삭감돼 받지 못한 임금 등을 청구하면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2012다96885 판결)

원심 법원은 “이 사건의 임금피크제는 보수의 인상이 아니라 임금이 삭감되는 구조”라며 “이사회의 의결절차나 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고 하더라도 무효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노사 합의만 거친 기존 인사규정과 저촉되는 협약의 내용은 직원들에게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임금피크제는 필연적으로 인사규정의 변경과 예산 및 신규 고용 규모 등의 변동을 수반하는 것이어서 내용 확정이나 이행을 위해 이사회의 의결이 필요한 중요사항이다”라며 “설립 목적과 운영자금의 조달 및 집행 과정, 국가의 관리·감독 및 이사회의 구성과 이사회 의결에 관한 여러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기존 인사규정과 저촉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노동협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단체협약의 내용은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돌려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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