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일반

[친절한판례氏] 전 여자친구 성폭행…수면제 먹인 게 상해?

대법원 "정신적 기능에 장애 초래해도 상해"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4.05 05:05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수면제 등 약물을 사용해 피해자를 성폭행한 경우 상해죄에도 해당돼 단순 강간이 아닌 강간치상으로 처벌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수면제 등으로 피해자의 정신적 기능을 침해한 것도 상해라는 논리에서죠.


A씨는 2006년부터 연인 관계로 지내던 B씨와 2008년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둘은 계속 친구로 지냈는데요. A씨는 불면증 치료를 위해 처방·조제 받아 가지고 있던 수면제를 피해자에게 몰래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다음 성폭행을 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2012년 A씨는 드라이브를 하던 중 커피에 몰래 수면제 성분을 집어 넣고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DVD방에 데리고 가 성폭행 하는 등 4차례의 성폭행과 9차례의 강제추행을 저질렀습니다. 수사 결과, B씨는 평소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지만 수면제 성분으로 인해 A씨의 범행 때마다 잠이 든 이후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가끔 정신이 희미하게 든 경우에도 바로 기절하다시피 깊은 잠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떤 범죄 혐의를 적용할지가 문제가 됐는데요. 단순 강간이나 강제추행이 아니라 상해죄도 함께 했다는 의미로 강간치상과 강제추행치상을 적용할 수 있을지가 쟁점이었습니다. 어떤 혐의를 적용하는지에 따라 실제 형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는데요. 


대법원은 ‘강간치상죄’ 또는 ‘강제추행치상죄’ 등에서 ‘상해’의 의미는 꼭 육체적 기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해당 혐의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받아들였습니다. (2017도3196 판결)

대법원은 “상해는 피해자의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것을 말하고 생리적 기능에는 육체적 기능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능도 포함된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수면제와 같은 약물을 투약해 피해자를 일시적으로 수면 또는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게 한 것은 강간치상죄나 강제추행치상죄에서 말하는 상해에 해당한다”면서 “약물로 인해 피해자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됐다면 자연적으로 의식을 회복하거나 외부적으로 드러난 상처가 없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약물 투약으로 정보나 경험을 기억하는 피해자의 생리적 기능에는 일시적으로 장애가 발생했고 △피해자의 신체와 정신상의 구체적 상태 △사용된 수면제의 종류와 용량 △투약방법 △피해자에게 발생한 의식장애나 기억상실의 정도 등을 종합해 봤을 때 상해에 해당한다”며 상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밝혔습니다.


◇관련조항


형법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01조(강간 등 상해ㆍ치상)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부터 제300조까지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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