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하랬잖아"…임신 시켜놓고 도망간 그놈

[Law&Life-'히트 앤드 런' 방지법 ①] 양육비이행관리원 있지만 버티면 받을 길 없어…"정부가 먼저 주고, 받아내자"

박보희 기자 2018.04.13 05:01
그래픽=이지혜 기자

"낙태하라는 말 안 듣고 낳았으니 알아서 하라며 연락을 끊거나, 양육비를 안주려고 유학을 가버리는 경우도 봤다. 양육비 지급 소송을 내는 것도 어려운데, 소송 중 재산을 가족들 명의로 숨겨버리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미혼모가 남자에게 양육비를 받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많은 이들이 저출산을 걱정한다. 하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미혼모(부)가 키우는 아이가 대표적이다. 엄마 또는 아빠가 혼자서라도 아이를 키우려고 고군분투 하는 동안 자신의 아이조차 나몰라라 하는 아빠 또는 엄마가 적지 않다.

아이를 키우는 이들이 비양육자에게 정당하게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혼모(부)를 위한 이른바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방지법'을 만들어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 지난달 25일 마감까지 21만7054명이 참여했다. 청와대의 답변 조건인 20만명을 넘김에 따라 청와대는 이에 대한 응답을 준비 중이다.

◇"양육비 받는다"는 미혼모는 단 5%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은 양육자가 비양육자에게서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강제력을 행사하는 법이다. 핵심은 비양육자가 양육비을 주지 않을 때 정부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주고, 대신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받아내는 것이다. 현재 덴마크 등이 이런 제도를 운영 중이다.

아이는 혼자 태어나지 않는다. 양쪽 부모가 어떤 방식으로든 양육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느 한쪽이 책임을 방기하고 회피하는 일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성가족부가 2012년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부모 가족 중 83%가 상대방으로부터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미혼모의 경우는 더 어렵다. 여성정책연구원이 2010년 미혼모 727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생부로부터 양육비 지원을 받는다는 응답은 4.7%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2015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만들었다. 미혼모(부) 만을 위한 기관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도 상대방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이들 역시 지원 대상이다. 문제는 이행관리원 역시 양육비를 강제로 받아낼 방법은 없다는 점이다.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받아내려면 결국 소송을 해야 한다. 미혼모가 소송을 하려면 먼저 생부를 찾아야하고, 친자 확인을 거쳐야 한다. 김 대표는 "생부를 찾아내는 것부터 고비"라며 "임신 확인 후 연락이 끊겨 어느 사는 지도 모르는 등 정보가 적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생부를 찾아내 소송에서 이긴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다. 수개월간 소송비를 들여 결국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결정을 받아도 실제로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양육비 지급 이행률은 32%에 불과하다. 김 대표는 "오랜 시간 어렵게 소송을 해 양육비 지급 결정을 받아도 재산을 빼돌리고 안 주면 억지로 받아낼 방법이 없다"며 "실제 양육비를 주지 않겠다며 재산을 빼돌리고 두 차례 구치소에서 30일을 살다 나온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양육비 이행을 강제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이 나 몰라라 하는 부모…국가가 나서야"

이에 정부가 먼저 양육비를 지원한 뒤 생부(모)로부터 그 만큼을 받아내는 '양육비 대지급제'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생소한 얘기는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예산 문제 때문이다. 정부가 나중에 비양육 부모부터 돈을 받아낼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예산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책임지지 않는 부모'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재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김 대표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양육비를 안 주면 여권이나 운전면허 발급에 제안을 두는 등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며 "당장 대지급제를 시행하지 못하더라도 이행관리원에 생부를 재산을 찾아내고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양육비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비양육자의 월소득이 150만원 이하이면 소송을 해 이겨도 양육비를 받아내기 힘들다. 배인구 변호사는 "민사집행법상 일정 소득 이하이면 재산 압류 등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소득이 적다고 아이를 키울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며 "미국의 경우 소득이 없다면 정부가 일을 시켜서라도 양육비를 내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양육자는 일자리 등에 제약이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많은 반면 비양육자는 소득이 적으면 양육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며 "양육자에게만 양육 책임을 묻는 사회적 인식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혼모(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역시 어려운 점"이라며 "혼자서라도 자녀 양육을 결정한 부모의 책임감을 인정해주고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혼모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비양육 부모의 책임을 강력히 물을 때 상대방을 성적으로 배려하고 스스로의 책임을 제대로 인지하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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