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아니라던 한국 남자, 유전자 검사했더니…"

[피플] '코피노' 양육비 청구소송 정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주)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4.13 04:00

정준영 변호사 법률사무소 해주./사진제공=정준영 변호사


“'아빠찾기'라고 하면 좋게 들리지만 사실은 반인륜적 행동 때문에 벌어지는 소송이죠. 범죄가 아니라 형사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만 돈으로라도 자신이 낳은 아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자녀인 '코피노'의 양육비 청구소송을 여럿 맡고 있는 법률사무소 해주 소속 정준영 변호사(42·변호사시험 3회)의 말이다. 

2015년부터 판결을 통해 필리핀에 자녀를 버리고 간 한국인 남성들에게 자녀의 양육 책임이 인정되기 시작했다. 이때 정 변호사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필리핀 여성 A씨와 자녀 B씨를 대리해 한국인 남성 C씨를 상대로 "과거 양육비로 2000만원을 지급하고 앞으로도 월 50만원씩 양육비로 지급하라"는 판결을 끌어냈다.

“2010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들어가기 전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서 코피노들의 사연을 봤습니다. 변호사가 되면 소송을 통해 그들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정 변호사는 일단 의뢰인의 연락을 받으면 직접 필리핀에 가서 조사하고 증거자료부터 확보한다.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위임장 등을 받아 한국에서 양육비를 받기 위한 소송을 낸다.

필리핀 법원에서 승소하더라도 강제집행이 어렵기 때문에 아버지가 한국인인 경우 처음부터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한다. “아버지가 한국인이지만 계속 필리핀 현지에 있어서 송달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취하한 적도 있죠.”

소송을 제기한 뒤엔 아버지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게 가장 힘들다. 실제로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조회 신청을 통해 사진, 전화번호, 이름 등을 토대로 아버지를 찾는다. 탈퇴를 했더라도 기록이 남는 이메일 주소도 큰 도움이 된다.

“소송이 시작되면 아버지가 필리핀에 가서 어머니를 협박하거나 돈을 준다고 약속하고 그만두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속한 돈을 받지 못해 다시 의뢰인에게 연락이 오기도 하죠.”

소송이 시작되면 유전자 검사를 거친다. 이 단계에서 자녀와 아버지의 유전자가 일치하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2014년에 맡았던 사건은 자녀가 둘이었는데, 아버지는 첫째는 자기 아이가 맞지만 둘째는 아니라고 주장했죠.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실제로는 반대였습니다.”

전체 소송 과정은 사건마다 다르지만 인적사항 확인과 검사 등에 꽤 시일이 걸려 1년 가까이 소요되기도 한다. 유전자 검사, 통역, 출장 비용, 인지송달료 등도 먼저 부담한 뒤 승소하면 비용을 돌려 받는 방식이라 위험 부담이 크다.

“한 번은 9살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시도했는데, 1943년생 아버지가 이미 숨졌다는 겁니다. 이러면 소송이 중단돼 비용은 돌려 받을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승소했을 때의 보람은 무엇보다 크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 K팝 등 한류에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아 한국인 국적을 갖고 태권도와 한국어를 배우는 등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고 한다.

필리핀은 아직 이메일 등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우편 역시 느린데다 비싸다. 한 사건을 놓고 정 변호사가 직접 현지를 서너번 왔다갔다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러다보니 정 변호사는 현지 분사무소를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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