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자수첩] 발 빼는 검찰, 발 헛디딘 경찰

한정수 기자 2018.04.24 05:00
“경찰이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수사권 조정으로 말이 많은데 사건을 가져올 수 있겠어요?”

왜 ‘드루킹’ 사건을 직접 수사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검찰 간부는 이렇게 답했다. 온라인 기사 댓글의 추천수를 조작한 일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여당 국회의원과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사건이다. 심지어 의원 보좌관과의 돈거래 정황까지 나왔다. 야3당이 특검법 공동발의까지 합의한 엄중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팔짱만 끼고 있다.

드루킹 사건은 더 이상 검찰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드루킹 일당 3명을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기사에 달린 정부 비판적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기소는 검찰이 했고, 앞으로 공소유지도 검찰의 몫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얘기만 나오면 “경찰이 자료를 주지 않아 모른다”고 한다. 그동안 박근혜·이명박정부 시절 적폐사건에 두팔 걷어붙이던 검찰의 모습과 대조된다. 오히려 검찰이 경찰의 헛발질을 내심 즐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경찰은 어설픈 브리핑으로 이미 한차례 신뢰를 잃었다.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드루킹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냈고 김 의원은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19일엔 김 의원이 기사 링크를 드루킹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다음날엔 “김 의원이 기사와 함께 ‘홍보해주세요’라고 보내면 드루킹이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도 했다.
사흘 만에 말이 바뀐 셈인데,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6일 이후 관련 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야당 국회의원이어도 “의원은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했을까? 경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 건 그래서다.

수사권 조정 논의가 한창인 미묘한 시점이다. 검·경 모두 정권을 의식하자니 여론의 뭇매가 두렵고, 여론을 살피자니 수사권 조정의 칼자루를 쥔 정권이 걸린다. 그러나 청와대의 뜻과 여론이 과연 다를까? 때론 원칙대로 가는 게 최선일 수 있다.

사회부 법조팀 한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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