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드루킹' 특검과 경찰의 '손타쿠'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아베 총리 지키려 문서 조작한 일본…알아서 기는 '손타쿠', 일본만의 문화일까

이상배 기자 2018.04.26 05:00

'드루킹 사건'과 '모리토모 스캔들'. 한일 양국에서 각각 진행 중인, 정권 실세가 연루된 사건이다. 별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두 사건에는 한가지 공통된 키워드가 등장한다. 바로 오사카다.

드루킹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오사카총영사로 도모 변호사를 추천했다고 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게 드루킹이 정부와 여권에 복수를 다짐한 계기가 된 것으로 경찰은 의심한다. 정부 비판적인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기사의 댓글 추천 수를 부풀리다 드루킹은 덜미가 잡혔다.

모리토모 스캔들은 오사카에 위치한 학교법인 모리토모 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인 게 발단이다. 이 학교의 명예교장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다. 일본 재무성이 총리의 부인을 위해 모리토모 학원에 특혜를 줬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두 사건의 전개 과정에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일본어로 '손타쿠'(そんたく), 한자어로는 '촌탁'(忖度)이라는 폐습이다. 남의 마음, 특히 윗사람의 뜻을 미리 헤아려 그에 맞춰 행동한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알아서 긴다' 정도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가 모였다는 재무성은 국유지 헐값매각에 이어 문서조작으로 또 한번 자살골을 넣었다. 둘다 아베 총리를 위한 '손타쿠'였지만 결과적으론 아베 총리의 발등을 찍었다.

재무성은 국유지 매각 당시 결재문서 등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총 14건의 문서를 조작했다. 원래 문서에는 '본건의 특수성' '특례적인 내용' 등의 표현이 담겨 있었다. 여러 정치인과 아베 아키에 여사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의회에는 이런 문구들을 삭제한 문서를 보냈다.

아사히 신문은 특별취재팀을 꾸려 1개월 넘게 취재한 끝에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 아베 총리는 문서조작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의회에 나온 오타 미츠루 재무성 이재국장은 문서를 조작한 이유에 대해 "정부 전체의 답변을 신경쓰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정부 전체의 답변' 중에는 "나와 아내가 모리토모 학교 비리에 개입했다면 사퇴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도 포함돼 있었다. 총리의 거취를 미리 걱정해 알아서 기었다는 뜻이다. 전형적인 '손타쿠'다.

일본의 '손타쿠' 문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0년 일본 검찰은 당시 정권의 최고 실세였던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이 정치자금을 허위기재한 사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일본 검찰의 '자존심' 도쿄지검 특수부는 '살아있는 권력'에 고개를 숙였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경찰은 드루킹 일당의 휴대폰 170여대를 압수하고도 이 가운데 133대는 분석도 하지 않고 검찰에 넘겼다. 그러고도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브리핑에서 "김 의원은 드루킹이 보낸 메시지를 대부분 읽지도 않았다"고 했다. 김 의원의 답장도 '의례적'이라고 했다. 김 의원을 조사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은 “앞서 나가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의원은 공범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며칠 뒤엔 김 의원이 드루킹에게 기사 링크를 보내며 홍보를 부탁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 청장은 뒤늦게 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수사 브리핑에서 '의례적'이란 주관적 표현을 쓰며 진실을 예단한 건 어떻게 설명할건가.

이 와중에 검찰은 드루킹 사건을 '강 구경 불구경'하듯 보고 있다. 드루킹 일당 3명을 제 손으로 재판에 넘겼으면서도 보완수사에 대해선 "경찰이 할 일"이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박근혜·이명박정부 적폐사건에 두팔 걷어붙이던 검찰의 모습과 대조된다. 

야3당이 드루킹 사건에 대해 특검법안을 발의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못 믿겠다는 얘기다. 특검까지 할 사안인지를 놓고는 논란이 많다. 어쨌든 경찰과 검찰이 자초한 일이다. 경찰이 어설픈 브리핑으로 신뢰를 잃지 않았어도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검찰이 보완수사를 적극 지휘했어도 이랬을까? 궁금하다. '손타쿠'는 과연 옆나라의 이야기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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