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나섰다가…" 싸움도 못 말리는 경찰들

[Law&Life-경찰 공권력의 딜레마 ①] 소송 걸릴까 '조심'…공무수행으로 소송 당해도 경찰 개인 혼자 해결

박보희 기자 2018.05.11 05:01
지난달 30일 오전 6시쯤 광주 광산구 수완동에서 30대 남성이 택시를 먼저 타려했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어 집단폭행을 당해 실명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당시 폭행 영상. (페이스북 동영상 갈무리) /사진=뉴스1

지난달 30일 광주에서 벌어진 집단 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한쪽 눈을 사실상 실명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사건 당시 촬영된 동영상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집단 폭행을 말리지 않고 지켜만 보는 장면이 담겨 논란이 됐다. 오히려 가해자가 경찰을 위협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이에 경찰이 범죄자에게 강력 대응할 수 있도록 공권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권력 강화를 통해 조직폭력배 등이 국민들을 폭행을 할 수 없도록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 '경찰의 적극적 대응을 위해 공무수행 중 발생한 사건 책임은 국가가 져야한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반론도 없지 않다. 경찰의 물리력 행사를 광범위하게 보장할 경우 경찰권 남용과 일반 시민들의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소송 걸릴까 '조심'
경찰의 ‘집단폭력 사건 신고시 조치요령’에 따르면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들은 집단폭력 신고를 받을 경우 가담인원, 흉기 등 위험물 소지 여부 등 현장 상황을 파악해 출동해야 한다. 현장에서 가해자를 검거한 후에는 주변인과 관련자, 폭행자를 분리하고 사상자는 응급구호·후송 조치한다. 이어 관련 증거 확보와 함께 혹시나 숨어있을 범행 관련자를 찾기 위해 주변인의 신원을 확인한 뒤 피의자들을 인계한다.

경찰은 광주 집단 폭행 사건 당시 대응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자 이같은 절차에 따랐다고 해명했다. 김순호 광주 광산경찰서장은 "가해자 전원에게 수갑을 채워 체포했고 격렬히 저항하는 가해자들에게는 테이저건을 사용했다"며 "신속한 현장 출동, 상호 분리, 부상자 후송, 경찰장구를 이용한 체포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진압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개인적으로 지게 될 책임이 두려워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일선 경찰들은 민·형사 소송 등에 휘말릴 위험이 업무 수행에 부담이 된다고 토로한다. 경찰 등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을 체포, 감금, 폭행해 상해가 발생할 경우 독직폭행죄에 해당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경찰들의 소송 지원을 담당하는 A 경찰은 "공무집행 중 문제가 생겨 소송을 당한 주변 동료들을 이야기를 듣거나 관련 이슈가 생기면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다"며 "소송을 당할까 걱정이 돼 적극적인 대응이 힘들다고 말하는 현장 경찰들도 있다"고 전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10조는 경찰의 무기 사용에 대한 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경찰은 △범인의 체포 △범인의 도주 방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의 방어 및 보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 제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필요한 한도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B 경찰은 "법에 따라 무기 등 장구사용 메뉴얼이 있지만 다양한 현장 상황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모호한 점도 있다"며 "소송을 당하면 정당한 법집행이었다고 하더라도 시시비비를 따지게 되는데 입증이 쉽지 않다. 이를 생각하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공무수행으로 소송 당해도 경찰 개인 혼자 해결

그러나 특정 사건을 놓고 경찰의 물리력 사용을 폭넓게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법 체계 내에서도 범죄 진압을 위한 경찰 권한은 충분하고, 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할 경우 과잉진압 등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경찰의 무리한 공권력 행사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위대 진압 중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 사건이나 용사참사 등이 대표적이다. 또 지난해에 6월 경남 함양에서는 정신병원 입원을 거부하던 C씨가 경찰의 테이져건을 맞고 숨졌다. 

지난해에는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관의 팔을 꺾었다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박모씨가 재심 끝에 8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당시 경찰은 '그런 적 없다'고 주장하는 박씨와 박씨의 아내에 대해 법정 위증죄까지 추가로 기소해 공무원이던 아내는 직장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현장을 찍은 동영상 분석 자료가 증거로 드러나면서 경찰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경찰의 부당한 공권력 남용으로 한 가족의 인생이 희생된 사례다.

최영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는 "지금의 경찰의 진압을 거부하면 공무집행방해로 현행범 체포도 가능하다"며 "공권력 행사를 위한 법적 장치는 충분하다. 지금의 문제는 경찰이 권한이 없어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경찰들 역시 권한 부족보다는 정당한 법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개인이 책임을 져야하는데서 오는 부담을 주로 호소했다. A 경찰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조직적 대응이 가능하지만 경찰 개인을 상대로 한 소송은 개인이 혼자 책임져야 한다"며 "개인 소송 비용 지원을 위한 예산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조직 차원에서 대응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경찰 개인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경우 경찰권 행사에 고민이 생길 수 있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며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범죄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 개입인 만큼 경찰이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공무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상황에 맞는 유연한 법 해석을 통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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