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주의 PPL] '변호사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타노스의 조건

변호사업계, 갈등 '유발자'가 아닌 '종결자'돼야

유동주 기자 2018.05.13 05:00
악당 타노스 /출처=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공식 스틸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대한 스포일러가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포함돼 있습니다.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엔 마블 시리즈 최강의 악역(빌런·villain) '타노스'가 등장한다. 악역임에도 사실상의 '원톱 주인공'인 타노스의 목표는 '우주 전체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우주 정복을 위한 야욕이 아니다. 오히려 '공멸'을 막자는 공리주의다. '유한 자원'이란 조건에서 지속 가능하게 생존하려면 절반은 사라져야 한다는 소신이다. 일종의 '확신범'인 셈이다.
타노스는 부(富)와 지위고하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위적 구분없이 절반은 사라져야 한다는 '절대 평등'이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기득권을 인정하고 '빈민 통제'로 해결책을 낸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타이탄이라는 고향 행성의 멸망, 양녀(養女) 가모라 고향에서의 학살 실험을 거치며 이론을 검증까지 했다. 편협할지라도 철학과 고민에 설득력을 확보했고 강한 실행력까지 갖췄다.

◇변호사 업계 타노스들 "변호사 감축이 살 길"

영화 속 타노스의 모습은 생뚱맞게도 변호사 업계 현안을 떠올리게 한다. '인구과잉·먹거리부족·공멸'. 변호사들이 자주 하는 얘기다. 십수년째 '변호사 감축'이 업계 화두다.

짧은 기간에 대량의 신규 변호사가 쏟아진 건 사실이다. 지난 7년간 로스쿨에서 1만명 정도가 배출됐다. 같은 기간 사법연수원도 약 3000명 배출시켰다. 그 이전과 비교하면 전체 변호사 규모는 2배가 됐다.

공급이 늘자 수요도 증가했지만 역부족이다. 변호사 한 명 없던 공공기관도 새로 채용하고, 스타트업 수준의 작은 기업에서도 변호사가 일하는 등 전반적으로 일자리는 늘어났지만 공급을 따라가진 못하고 있다. 전문 자격사가 고수입을 보장받던 시대가 끝난 지 오래됐지만, 변호사 업계야말로 그 변화를 급격하게 겪는 중이다.

변호사들은 큰 위기를 느낀다. 먹거리 감소를 당연하다며 웃어 넘길 직업군은 없다. '변호사 타노스'가 태동할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게다가 '제왕적' 권한을 가졌다는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는 직선제다. 변호사회원들의 표를 받기 가장 쉬운 포퓰리즘 공약은 '변호사 줄이기'다. '변호사 타노스'가 되길 자청한 이들이 넘치는 이유다. 실제 그들이 당선됐다. 

그러나 '변호사 타노스'들이 원조 타노스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한다. 자격증을 가진 기성 변호사들은 보호대상이지만, 가지지 못한 로스쿨생이나 진학예정자들은 관심 밖이다. 기존 자격자만 보호하고 신규 진출은 최대한 막겠다는 게 '변호사 타노스'의 쉬운 목표다. 그래야만 현직들의 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타노스가 기득권 보호 없는 '절대 평등'을 고수한 것과 상반된다. 

◇'자격갱신·징계강화'는 왜 주장 안 할까

백번 양보해 변호사가 많은 게 문제라면 기득권을 흔드는 것도 방법이다. '자격갱신제' 도입이나 '징계 강화'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최신 판례는 언감생심, 바뀐 법령 공부도 안 하고 불법 브로커에 의존하는 낡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기성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 '자격갱신제'가 '신규 변호사 감축' 주장에 대한 반발로 나오는 이유다. 과거 대선에서 한 후보가 변호사를 포함한 전문직 자격갱신을 공약하기도 했다.

'징계 강화'도 퇴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그런데 자격을 아예 박탈시키는 '영구 제명'은 변협 역사상 손 꼽을 정도다. '어렵게 땄으니 범죄를 저질러도 자격 박탈은 지나치다'란 동업자 정신이 작동한다.  

이형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창립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변협이 지난달 주최한 로스쿨 10주년 심포지엄에서 발제자였던 변협 이사는 "변호사가 많아 사회 문제화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기성 변호사들 중에서도 솎아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해야 진정성을 인정받고 설득력을 갖는다.  

문제가 있거나 사고 친 변호사들의 자격증부터 박탈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속 타노스는 과업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희생시키기까지 한다. 그에 반해 변호사 업계의 타노스에게선 자기 희생이나 반성은 안 보인다. 직역 보호를 위해 신규 변호사 감축만 한다면, 과연 변호사가 되려는 이들과 법률서비스 수요자인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변협 선거를 앞둔 올 연말에도 '변호사 타노스'가 되려는 자들은 나타날 것이다. 기득권은 보호하고 신규 진출은 막는 방식은 또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협회장이라는 원탑 주인공이 되려는 변호사라면 영화 속 타노스 만큼의 그럴듯한 철학 혹은 소신이라도 갖춰야 하지 않을까. 갈등을 종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타노스다. 갈등을 유발하고 키우는 자는 타노스도 못 된다.

10일 열린 로스쿨협의회 10주년 행사에 '신규 변호사 감축'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변협은 불참했다. 변호사업계와 로스쿨의 갈등이 '인피니티 워'가 되진 않길 기대한다. 업계 수장이 변호사들과 로스쿨을 모두 아우를 포용력과 자격을 갖춘다면 전능한 '인피니티 스톤'은 저절로 그의 손에 안길 것이다.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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