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께서 잠시 뵙자고 하신다"…그 때 무슨 일이

[비선실록(秘線實錄)-승마지원 ①] 이재용 부회장 "대통령과 단 둘이 만난 사실 말하기 곤란"

한정수 기자 2018.05.16 04: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피의자 신문조서 표지


“오늘 다 진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017년 1월12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D빌딩 1904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은 김영철 검사(45·사법연수원 33기)와 마주앉아 있었다. 이날 이 부회장은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이하 특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이 부회장은 앞선 2016년 11월13일 검찰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66)과 대구에서 독대했던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2014년 9월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직후 약 5분간 따로 면담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이른바 ‘1차 독대’로 불린 그 만남이다.

김 검사가 “왜 그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 부회장은 “죄송하다”며 “비공식적인 만남이었기 때문에 독대나 개별 면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검사의 질문이 이어졌다. “검찰에서 이 부회장을 비롯해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64),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65) 등 이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 진술을 맞춰 1차 독대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대한승마협회 관련 대화를 나눈 사실을 숨겼는데, 이는 삼성그룹 차원에서 이 부회장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냐.”

이 부회장은 “그건 아니다”라며 “검찰에서 말씀을 못 드린 부분은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특검에서 조사받으면서 진실을 다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삼성그룹의 후계자가 검찰에 이어 특검에까지 불려나왔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시계는 2014년으로 되돌아간다. 

다음은 머니투데이 법률미디어 '더엘'(the L)이 단독 입수한 이 부회장 등 관련자들의 피의자신문조서를 토대로 재구성한 당시 상황이다. 

◇“대통령께서 잠시 뵙자고 하신다”

2014년 9월15일, 대구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직후 안봉근 당시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비서관(52) 이 부회장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대통령께서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있는 대기실로 안내를 받았다. 5분 남짓한 짧은 만남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보자마자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76)의 건강에 대해 물은 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원해 줘 고맙다고 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삼성이 대한승마협회를 좀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특검에서 이 부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올림픽을 대비해 승마 선수들에게 좋은 말도 사주고, 전지훈련도 도와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은 달랐다. 다음은 박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21일 검찰에서 한 진술이다. “그 당시 여러 군데에서 승마협회가 운영이 잘 안 된다는 말도 듣고, 예전에 삼성이 승마협회를 맡아서 잘 운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가 이 부회장에게 삼성이 맡아서 해주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그러나 좋은 말을 사주라는 등의 구체적인 말을 한 적은 없다.”

김 검사가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승마협회 문제를 언급한 이유를 묻자 이 부회장은 “궁금했다. 당시에는 승마협회를 맡아 본 경험이 있고 경제적으로 삼성이 여유도 있다보니 맡기나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오랜 지인이자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비선실세’ 최순실씨(62)의 딸 정유라씨(22)가 승마 선수라는 점을 염두에 둔 부탁인지 몰랐다는 얘기다. 


◇"대통령과 단 둘이 만난 사실 말하기 곤란"

그렇다면 이 부회장은 왜 검찰 조사에선 1차 독대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까? 다음은 이 부회장이 2016년 11월13일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이다. “제 기억으로는 2014년 9월쯤에는 대통령을 개별 면담한 사실이 없다. 이건희 회장님이 2014년 5월쯤 입원을 하고, 실적도 떨어질 무렵으로 정신이 없을 때다. 제 기억으로 대통령을 처음 면담을 한 것은 2015년 7월25일이 처음이었다.”

이 부회장이 검찰에서 진술할 당시는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최씨가 이미 구속된 상태였지만 박 전 대통령은 아직 건재했다. 국회에서 특검법이 아직 통과되지 못했고, 탄핵소추안 역시 가결되기 전이었다. 

박 전 대통령에게 혐의가 향할 수 있는 1차 독대에 대해 진술할 경우 정권 차원의 보복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67)의 진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음은 최 전 실장이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한 얘기다. “이 부회장이 검찰에 출석하기 전 삼성그룹 임원들에게 ‘대통령과 단 둘이 만난 사실을 검찰에서 말하기 곤란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부회장이 부담이 돼 검찰에서 사실대로 진술하지 못한 것 같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범 기자

◇탄핵소추 이후 바뀐 진술들 
그러나 검찰 조사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2016년 12월9일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이 부회장이 특검에 소환됐을 땐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이었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이 유력시되던 때다. 박 전 대통령이 직무정지로 사실상 영향력을 잃으면서 이 부회장으로선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장 전 사장도 앞선 검찰 조사에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1차 독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특검에선 시인했다.

승마 지원을 결정한 과정에 대해 최 전 실장은 1차 독대가 있던 날 이 부회장과 자신, 장 전 사장이 모여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고 올림픽에 대비해 승마 선수들에게 좋은 말도 사주고 전지훈련도 도와주기로 의사결정을 했다고 특검에서 진술했다. 또 박 전 사장을 승마협회 회장으로 내정한 것과 관련해선 “내가 이 회장을 대리해 미래전략실장으로서 결재를 했다”면서도 “사전에 이 부회장의 의견을 들어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얼마 뒤 이 부회장은 특검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나는 그냥 최 실장에게 ‘대통령이 불러서 승마협회를 맡아 달라고 하니 한번 알아봐 달라. 청와대에서 연락이 오겠죠’ 정도로 가볍게 전달을 했다. 최 실장에게 대통령의 말을 전달한 이후에는 전혀 내가 챙겨보지 않았다. 최 실장이 나에게 나중에 (박 사장이 승마협회 회장으로 내정됐다고) 알려준 것 같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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