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변협, 대법관 천거 또 '공개'…'비공개 원칙' 사문화?

[유동주의 PPL]

유동주 기자 2018.05.16 05:00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입장해 착석해 있다. /사진=뉴스1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오는 8월 퇴임을 앞둔 3명의 대법관 후임으로 9명의 후보를 '공개' 천거했다. 또 다시 '비공개 원칙'을 어긴 셈이다. 만약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개 천거된 인사 중에 대법관이 나온다면 사실상 '비공개 천거 원칙'이 사문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후보추천위) 규칙' 제6조엔 대법관 제청대상 후보자 추천을 위한 '천거(薦擧)'는 '비공개'로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규칙 제8조에 따르면 이를 위반해 심사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려 한 경우에는 '피천거인'이 대법관 후보추천위 심사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대법원 공고도 '비공개 천거' 규정을 어기면 심사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대법원 규칙' 어기는 변협

대법원이 이런 규정을 만든 것은 개인·단체가 의도를 갖고 특정인을 밀기 위해 여론전을 펼치는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함이다. 실제로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공개적으로 후보를 천거하기도 한다. 

변협 등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대법관 후보를 '공개' 천거했다. 그때마다 대법원은 공개 천거된 인사들은 심사에서 배제하는 방법으로 불이익을 줬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이 공개 천거 대신 비공개 천거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변협만은 '비공개 천거' 규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해왔다. 예를 들어 지난 2015년 변협은 민일영 전 대법관 후임 후보자로 강재현 변호사와 김선수 변호사를 '공개' 천거했다. 변협은 당시 '비공개' 규정을 어기고 천거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두 변호사를 후보로 천거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변협에 의해 천거된 두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거르는 절차가 없는 '의견제출 대상 후보군' 명단에는 포함됐지만 실제 후보추천위 심사대상에선 강재현 변호사가 제외됐다. 김선수 변호사는 변협 외에 다른 천거인에 의한 천거가 중복돼 심사대상자엔 포함됐다. 

당시 대법원 후보추천위는 강재현 변호사를 심사대상에서 제외한 이유가 '공개' 천거임을 명확히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 변협에 '공개 천거가 피천거인에 불이익으로 작용한단 점'을 경고한 셈이다.

'비공개 서면' 방식으로 천거할 것을 알리는 대법관 제청대상자 선정을 위한 천거 공고 중 일부/사진=대법원 홈페이지 캡쳐


◇변협 '공개 천거'한 조재연, 대법관 임명 '혼란'

지난해엔 사실상 최초로 변협의 공개 천거 인사가 대법관에 임명되는 이변이 발생하며 '비공개 천거' 원칙에 혼란이 생겼다. 변협이 지난해 5월 이상훈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선수·강재현·한이봉·조재연 변호사를 공개 천거했는데, 이중 조재연 변호사가 최종적으로 제청돼 대법관이 된 것이다.

외형만 봐선 '비공개' 규정을 어긴 변협의 천거가 배제되지 않은 셈이 됐다. 변협은 지난 14일 9명의 후보를 천거하는 내용의 성명서에서 조재연 대법관을 천거 성공사례로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판사 출신인 조 대법관의 경우는 변협 천거로만 대법관이 됐다고 볼 수는 없다. 변협 외에 다른 곳에서도 중복 천거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후보추천위는 '공개' 천거가 있었더라도 '비공개' 중복 천거가 있는 인사에 대해선 배제하지 않을 수 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변협 등에 의해 '공개' 천거된 인사를 무조건 배제하면 '네거티브' 방식으로 후보자에서 탈락시킬 의도로 오용될 수 있다"며 "이 경우 국민 추천권을 넓게 보장한다는 의미로 시작한 천거제도가 일부 단체나 개인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후보추천위) 규칙' 제6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후보추천위) 규칙' 제8조

◇판사 3명 포함 9명 천거한 변협

만약 이번에도 변협에 의해 공개 천거된 9명 가운데 제청 대상후보자가 나온다면 '비공개 천거' 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개 천거에 아무런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공개 천거된 법조인이 비공개로 중복 천거돼 후보가 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지난해처럼 후보추천위가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외부에서 확인할 수가 없다.

한편 올해 변협이 현직 법원장을 포함해 중견 판사를 3명이나 공개 천거 대상에 포함한 것은 자신들의 천거 인사가 대법관에 임명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변협 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의 천거도 원칙상 일반 개인들의 천거와 다를 바 없이 취급하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천거된 후보들에 대해선 결격사유가 명백하지 않은 경우엔 모두 후보군에 포함된다. 다만 천거돼도 본인이 심사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만 명단에서 빠진다. 

◇국민 누구나 '대법관 천거' 할 수 있어

변협·시민단체 등은 '천거'라는 표현이 일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추천'으로 바꿔 쓰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엄밀하게 보면 '천거'와 '추천'은 다르다.

변협 등이 대법관 제청대상 후보자 추천을 위한 후보군을 법원에 제출하는 것은 정확하게는 '추천'이 아니라 '천거'로 표현해야 한다. '추천권'은 대법원 후보추천위에 있는 만큼 이와 구분하기 위함이다. '천거'는 제청대상 후보자 '추천'의 전(前) 단계인 셈이다. 

대법관 후보 천거의 경우 변협과 지방변호사회, 시민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일반 개인이나 단체 누구나 대법관 후보를 천거할 수 있다. 현행 제도상에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경력 20년 이상의 45세 이상 법조인을 천거해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게 할 수 있다. 자천(自薦)은 불가능 하지만 타천(他薦)에는 제한이 없다. 

대법관 후보를 천거하려면 대법원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서식에 맞춰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가 '천거서' 제출기간이었다. 곧 있을 심사동의자에 대한 '의견제출'도 마찬가지다. 간단한 의견서 서식을 기간 내에 접수하기만 하면 된다.



게인이 대법관 제청 후보자 천거시 작성하는 서류 예시/대법원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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