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시키는데 안 할 수 있겠습니까"

[비선실록(秘線實錄)-승마지원 ②]삼성은 왜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았나

한정수 기자 2018.05.23 04: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2014년 9월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그룹 서초사옥 C동 41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최지성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67)과 미팅을 잡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대구에서 열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개소식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66)이 이 부회장을 따로 불러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 운영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이른바 '1차 독대'가 있었던 날이다.

◇"한번 알아봐 주세요"

이날 이 부회장은 최 전 실장에게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했다. 다음은 이 부회장이 2017년 1월12일 박영수 특검팀에서 진술한 당시 상황이다. "제가 지시를 한 것은 아니다. '한번 알아봐 달라' 정도로 가볍게 전달을 했다. 최 전 실장은 '알아보겠다'고 했다."

이어 최 전 실장이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한 진술을 보자. "이 부회장이 '대통령께서 요청을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라고 물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시키는데 어떻게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이 부회장도 제 말에 동의했다."

이 부회장과의 미팅 직후 최 전 실장은 장충기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64)을 불렀다. 다음은 장 전 사장이 2016년 12월20일 특검에서 진술한 당시 상황이다. "최 전 실장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제 생각에는 대통령이 직접 이 부회장에게 요청한 사항인데 거절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어려울 것 같아 최 전 실장에게 그런 취지로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최 전 실장도 같은 생각이라면서 저에게 전임 회장사인 한화그룹 관계자들을 만나 대한승마협회 인수 문제를 협의해 보라고 지시를 했다."

이후 장 전 사장의 주도 아래 삼성이 승마협회를 넘겨받는 작업이 이뤄졌다. 장 전 사장은 우선 인천아시안게임(2014년 9월19일∼10월4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곤 2014년 10월말쯤 승마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차남규 한화생명 당시 사장에게 연락해 회장사 인수 의사를 전달했다. 한화 측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승마협회 근무 경험이 있는 이영국 전 삼성전자 상무(56)가 실무 작업을 맡았다. 같은 해 12월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65)이 승마협회 회장으로 내정됐다. 박 전 사장은 이듬해 3월 승마협회 대의원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이 부회장은 승마협회 인수 과정에 관여했을까? 이 부회장이 특검에서 "최 전 실장에게 대통령의 말씀을 전달한 이후에는 전혀 챙겨 보지 않았다"고 했다. 검사가 "대통령이 각별하게 지시한 사항인데 진행 상황을 챙겨 보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묻자 그는 "당시에는 그렇게 대단한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대통령으로부터 승마 이야기기를 들었을 때 크게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잊어 먹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는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76)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다 실적 부진까지 겹치는 등 여러모로 경황이 없었다는 게 이 부회장 측의 입장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범 기자

◇"정유라 존재, 이재용 부회장에 보고 안 했다"

그렇다면 당시 삼성 수뇌부는 '비선실세' 최순실씨(62)의 딸 정유라씨(22)가 승마 선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장 전 사장이 2017년 2월12일 특검에서 한 진술을 보자. "대통령께서 저희에게 승마협회를 인수해 지원을 하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정윤회씨(63) 딸이 승마선수니까 대통령께서 승마협회에 관심을 가지시는구나. 삼성이 한화보다 더 크고 이전에 승마협회 회장사도 해 본 경험이 있어 승마협회를 더 잘 지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러시는가 보다. 한화가 뭐 잘못한 것이 있나'며 혹시 정유라 때문에 저러시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장 전 사장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박 전 대통령의 승마협회 지원 요구가 정유라씨와 관련돼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요구를 전달 받은 직후가 아니라 2014년말 '정윤회 문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라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또 장 전 사장은 정유라씨의 존재에 대해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이 부회장 역시 "(장 전 사장으로부터) 그런 말은 없었다"며 보고받은 바 없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검사가 "정보력이 뛰어난 삼성에서는 비선실세인 정윤회와 최순실의 딸이 승마선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대통령의 의중이 정유라 지원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당시 대통령의 의중을 몰랐다는 말이냐"고 물었지만 이 부회장은 시종일관 "몰랐다"고 했다. 

최 전 실장도 "당시 장 전 사장으로부터 정유라에 대한 말을 들어 본 일이 없고, 당시만 해도 승마협회 문제가 정유라와 관련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수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그러면서 "박 전 사장이 2015년 8월쯤 독일에 다녀온 후에야 정유라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다음은 장 전 사장이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검사와 주고 받은 문답이다.
장 전 사장: "삼성은 대통령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유라를 지원하게 된 측면이 있다."
검사: "막상 그 지시를 직접 받은 이 부회장은 삼성이 어떻게 정유라를 지원하는지 몰랐다는 것이 상식에 맞다고 보는가?"
장 전 사장: "이 부회장은 대통령으로부터 올림픽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으신 것이고, 최 전 실장이나 저, 박 전 사장이 그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유라 지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원을 했던 것이다."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사진=이기범 기자

◇"청와대서 면담하고 싶어 하십니다"

2015년 7월20일, 장 전 사장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59)이었다. "대통령께서 7월25일, 이 부회장을 청와대에서 면담하고 싶어 하십니다." 장 전 사장은 이를 이 부회장과 최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 이른바 '2차 독대' 요구다.

장 전 사장은 안 전 수석이 굳이 자신을 소통 창구로 삼은 데 대해 특검에서 "안 전 수석은 성균관대 교수를 할 때부터 제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연락을 한 것 같다"며 "제가 삼성에서 기획이나 홍보 업무를 오랫동안 해 왔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면담 준비에 들어갔다. 다음은 최 전 실장이 특검에서 진술한 당시 상황이다.
최 전 실장: "기획팀에서 삼성그룹의 투자, 고용 등에 관한 통계 수치를 준비해 이 부회장께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검사: "이 부회장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삼성그룹의 현안 문제에 대해 어떤 내용으로 대통령께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았느냐?"
최 전 실장: "대통령께서 부르셨으면 무슨 하실 말씀이 있어서 부르시는 것이지 대통령께 우리 회사의 현안을 말씀드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이 부회장도 검찰에서 비슷한 취지로 진술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장 전 사장이 뭔가를 보고했던 것 같은데, 제가 그것을 보고 그냥 고용 상황만 챙기자고 했던 것 같다. 제가 기억 나는 것은 당시 갤럭시S5가 영업이 잘 안돼 구조조정을 하면서 고용이 줄고 있던 상황이어서 대통령이 그것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실제 (박 전 대통령이) 그 이야기를 하셨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이 '1차 독대'에서 주문했던 승마협회 운영 건이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이 문제를 잊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최 전 실장이 먼저 이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이는 최 전 실장이 특검에서 한 진술과도 일치한다. "독대 일정이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 2014년 9월15일 대통령이 말씀하셨던 승마협회 진행 상황을 챙겨보기 위해 2015년 7월22일 박 전 사장에게 연락했다. 박 전 사장이 제주도에 출장을 가 있어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다. 이 부회장의 요구는 없었고 제가 스스로 판단해 승마협회 진행 경과를 챙겨봐야 한다고 생각해 박 전 사장에게 연락한 것이다."

2015년 7월23일 오전 10시, 이 부회장과 최 전 실장, 승마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박 전 사장이 이 부회장의 사무실에 모였다. '2차 독대'가 있기 이틀 전이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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