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기 "지원해야 하지 않겠나"…최지성 "해야겠지"

[비선실록(秘線實錄) 제6화-동계스포츠영재센터] 장충기, 영재센터 사업계획서 "이재용이 줬다"→"착각했다. 안종범이 줬다" 번복

한정수 기자 2018.06.20 04:00


2015년 7월2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청와대 안가. 박근혜 전 대통령(66)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이 마주앉았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이 승마협회 운영을 잘 못하고 있다"며 이 부회장을 강하게 질책했다는 '2차 독대' 날이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승마협회 뿐 아니라 동계스포츠와 관련한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동계스포츠와 관련해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활용하는 사업이 있는데 그게 잘 되면 평창올림픽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삼성에서 빙상협회(대한빙상경기연맹)도 맡고 있고 올림픽 메인스폰서이니 지원을 해 달라'고 했다." 이 부회장이 2017년 1월12일 박영수 특검팀에서 한 진술이다.

이후 삼성은 2015년 10월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씨(39)가 설립·운영에 관여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에 5억5000만원을 후원한다. 또 삼성은 이 부회장이 2016년 2월15일 박 전 대통령과 '3차 독대'를 한 뒤 2016년 3월에도 영재센터에 10억7800만원을 추가 후원한다.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하고 제3자인 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의 뇌물을 건넸다는 게 특검의 주장이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사업이 뭔지 알아봐라"

2차 독대 직후 이 부회장은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67),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64) 등을 만나 승마협회와 동계스포츠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월12일 특검에서 "대통령이 승마협회 문제 외에도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활용하는 사업에 삼성에서 지원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최 전 실장은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이 부회장이 일단 대통령이 말하는 사업이 어떤 내용인지 장 전 사장에게 알아보라고 말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진술은 조금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21일 검찰에서 '이 부회장에게 영재센터를 지원해달라고 말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 영재센터 자체도 내 머리 속에 없었다"며 "이번 사건이 나고 나서 영재센터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그는 "영재센터를 최씨가 설립한 것인지 몰랐고, 최씨가 부탁을 하거나 내가 이 부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도 했다.

당시까지 삼성은 박 전 대통령이 언급한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활용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은 이 부회장이 2017년 1월12일 특검에서 검사와 주고받은 문답이다.

검사: "2015년 7월25일 대통령이 말한 '동계스포츠와 관련해서도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활용하는 사업에 삼성이 도와달라'는 말은 최순실이 조카 장시호를 통해 2015년 7월쯤 설립해 운영하게 한 영재센터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이 부회장: "대통령으로부터 동계스포츠 관련 지원 요청을 받을 때는 어떤 단체인지 전혀 몰랐다."
검사: "피의자는 2015년 7월25일 대통령으로부터 정유라의 승마지원 사업 계획안 또는 영재센터의 동계스포츠 사업 계획안 등의 서류를 건네받은 사실이 있는가."
이 부회장: "없었던 것 같다."
검사: "장시호의 특검 진술에 의하면 2015년 7월24일 장시호가 최순실에게 영재센터의 동계스포츠 관련 계획안을 전달했고, 최순실이 이 계획안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데 2015년 7월25일 피의자가 대통령을 독대하는 과정에서 이런 내용의 예산안이 포함된 영재센터 사업 계획안을 대통령으로부터 받아 와 최 전 실장 또는 장 전 사장에게 전달한 것은 아닌가."
이 부회장: "나는 대통령으로부터 사업 계획안이든 뭐든 받은 기억이 없다."

최 전 실장의 진술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 전 실장은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2015년 7월25일 동계스포츠와 관련된 사업 계획안은 보지 못했다"며 "그런 사업 계획안이 있었으면 영재센터를 쉽게 찾아 바로 후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 사진=김창현 기자

◇"왜 삼성이 전화했는지 모르겠다"

그럼 삼성은 어떻게 영재센터를 찾아서 지원했을까? 다음은 장 전 사장이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한 진술이다. "이 부회장도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고 애매모호하게 말을 했기 때문에 일단은 어떤 단체인지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며 "그래서 대한빙상경기연맹 쪽 일을 맡고 있는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66·당시 빙상연맹 부회장)를 불러 이 부회장이 이야기한 단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단체가 있다고 하는데 한번 알아봐 달라. 혹시 빙상연맹 지원 요청이 들어왔을 수도 있으니 그 쪽도 알아봐 달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장 전 사장 진술에 따르면 황 전 전무는 당시 장 전 사장에게 "빙상연맹 쪽으로 지원 요청이 들어 온 단체는 없다"며 "어떤 단체인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보고했다. 이에 장 전 사장은 "조금 더 알아봐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황 전 전무는 "영재센터라고 은퇴한 동계스포츠 메달리스트들이 만든 단체가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장 전 사장은 황 전 전무에게 영재센터에 접촉해 보라는 지시를 한다. 황 전 전무는 접촉을 한 뒤 "(영재센터 측에서) 왜 삼성에서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고한다.

이와 관련, 장 전 사장은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혹시 이 단체가 아니라 다른 단체인가 생각을 해봤는데 단체 취지나 구성이 대통령이 말한 단체와 유사하지만 영재센터 대표 반응이 이상해서, 황 전 전무에게 '조금 더 알아봐 달라'고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다.

2015년 9월쯤 장 전 사장은 황 전 전무의 뒤를 이어 빙상연맹 부회장이 된 이영국 전 삼성전자 상무(56)에게 연락을 했다. 이때 이 전 상무는 "황 전 전무에게 따로 들은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50·당시 빙상연맹 회장)으로부터 영재센터 지원을 하라는 지시를 받아 지금 삼성전자와 협의를 하고 있다"고 보고를 한다.

장 전 사장은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영재센터가 대통령이 말한 단체가 맞구나 생각을 하게 됐고 어차피 빙상연맹 쪽에서 일 처리를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것 같아 잘 됐다는 생각에 이 전 상무에게 '혹시 지원 결정이 나면 나한테 알려달라'고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15년 9월 하순 또는 10월 초순 이 전 상무로부터 삼성전자가 5억원을 영재센터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장 전 사장은 최 전 실장에게 이 같은 사항을 보고하고 이 부회장에게는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나는 주로 최 전 실장에게 보고를 한다"며 "최 전 실장은 보고를 받고 특별한 반응은 없었고 그냥 알았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BH 관심사항'이라는 말 듣고 심적으로 큰 부담"

그렇다면 김 사장은 왜 영재센터에 거액을 후원토록 했을까? 그는 2016년 12월29일 특검에서 "2015년 8월20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57)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김 전 차관이 나에게 영재센터를 언급하면서 '영재센터가 BH(청와대) 관심사항이다. 이규혁씨(40)를 만나보라'고 했는데, BH 관심사항이라는 말을 들으니 심적으로 큰 부담이 돼 지원을 하게 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체육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료 교수에게서 최씨를 소개받은 뒤 정기적으로 최씨를 만나며 일을 도왔다고 한다. 영재센터 설립에 도움을 준 그는 문체부가 영재센터에 7억여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데 관여하고,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영재센터에 2억원을 후원하도록 하는 데도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차관은 또 최씨의 딸 정유라씨(22)의 이화여대 학사비리 사건에도 연루되는 등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김 사장은 당시 김 전 차관을 만난 이유에 대해 "내가 당시 빙상연맹 회장이라는 체육단체장을 맡고 있었고, 김 전 차관은 그런 체육단체를 담당하는 문체부 차관이다보니 가끔 만나서 업무 협의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진술했다.

2015년 8월21일, 서울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김 사장은 이규혁씨를 만난다. 김 전 차관이 김 사장에게 "이씨를 만나보라"고 한 바로 다음 날이다. 과거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였던 이씨는 중학교 후배인 장씨의 부탁을 받고 당시 영재센터 전무로 일하고 있었다.

이씨는 2016년 11월16일 검찰에서 "2015년 7∼8월 장씨가 '삼성에서 후원을 받으려고 한다. '미스터'(당시 장씨는 김 전 차관을 미스터라고 불렀다)가 도와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그런데 2015년 8월20일 김 사장이 메시지를 보내 이런저런 안부를 물은 뒤 '내일 오후에 차나 한잔 할까'라고 했다"며 "약속장소를 정한 뒤 장씨에게 전화를 해 내일 김 사장을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장씨가 '영재센터 제안서 가지고 가서 설명 잘 드려라. 그래야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김 사장에게 영재센터 설립 취지와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당시 김 사장과의 관계에 대해 "김 사장이 2010년도 이후부터 2016년 6월까지 빙상연맹 회장을 했기 때문에 평소 선수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며 "가끔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에 김 사장이 만나자고 했을 때 특별히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가 김 사장에게 영재센터 제안서를 건넨 뒤 삼성은 실제 영재센터에 5억5000만원을 후원한다. 이에 대해 이씨는 "확신은 하지 못했지만, 당시 장씨가 '미스터'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있어 했기 때문에 삼성에서 후원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자신이 'BH 관심사항'이라는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2016년 11월25일 검찰에서 "2015년 10월쯤 김 사장으로부터 별다른 설명 없이 '영재센터에 지원을 합니다'라는 전화 연락을 받았고, 나는 다소 쌩뚱맞은 이야기라서 그냥 '알아서 하세요'라고 대응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후 장씨에게서 삼성에서 5억5000만원을 후원받았다는 말을 듣고, 최순실이 역할을 해서 삼성 측에서 돈을 받아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차관은 장씨가 "'미스터'가 삼성 쪽에 힘써 주고 있다"고 말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장씨에게 법인(영재센터)을 운영하려면 기업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삼성을 콕 찝어서 이야기를 한 적은 없고 삼성을 알아봐 주겠다고 한 적도 없다"고 했다.

2016년 11월27일 검찰에서 김 전 차관은 2015년 8월20일 당시 김 사장과의 만남에 대해 "특별한 현안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술했다. 그는 '당시 김 사장을 만난 것은 삼성 측에서 장씨가 운영하는 영재센터에 후원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함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당시 빙상연맹에서 엘리트 선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하니 정부에서도 지원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다만 그 프로그램은 영재센터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관은 또 장씨가 삼성에서 후원을 받을 수 있다며 자신을 거론한 이유에 대해서는 "장씨가 최씨 대신 나를 끼워넣은 것 같다"며 "(장씨가) 정부 관계자가 끼어야 후원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사진=머니투데이DB

◇"이재용이 줬다"→"착각했다. 안종범이 줬다"

2차 독대로부터 약 7개월 뒤인 2016년 2월15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다시 청와대 안가에서 만났다. 이른바 3차 독대 자리다. 삼성이 영재센터에 1차로 5억5000만원을 후원한 이후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추가 지원을 위한 영재센터 사업 계획서를 전달했는지 여부가 추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된다.

이 부회장은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의 미래 신사업 추진현황 등을 설명했을 뿐 승마지원이나 영재센터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월12일 특검에서 '면담 후 대통령으로부터 영재센터 사업 계획서를 건네받았나'라는 질문에 "내가 뭘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장 전 사장의 얘기는 달랐다. 다음은 장 전 사장이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한 진술이다.
"2016년 2월15일 이 부회장이 대통령과 독대를 하고 와서 최 전 실장실로 나를 불렀다. 그래서 갔더니 이 부회장이 청와대에서 받은 자료라고 하면서 봉투를 하나 건네줬다. 이 부회장이 특별한 말 없이 자리를 떴고, 바로 최 전 실장이 있는 자리에서 봉투 개봉을 했다. 그 안에는 전년도에 지원을 했던 영재센터와 관련한 계획안이라는 것이 들어있었다. 쭉 훑어보니 맨 마지막에 9억8000만원 정도 되는 예산안이 붙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최 전 실장에게 '지원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더니 최 전 실장도 '지원해야겠지'라며 동의했다."

이후 장 전 사장은 이 전 상무를 불러 "1차 때처럼 삼성전자와 협의해 계획안대로 지원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 전 상무는 2017년 1월4일 특검에서 "2016년 2월16일 장 전 사장에게서 영재센터 사업 계획안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장 전 사장이 '영재센터 후원을 해야 한다. 삼성전자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장 전 사장의 진술에 대해 이 부회장은 2017년 1월12일 특검에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분(최 전 실장, 장 전 사장)이 내가 전달했다고 진술했으면 두 분 의견에 부정을 안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017년 2월13일 특검에서 조사를 받을 땐 "다시 생각해 봐도 그날 대통령으로부터 봉투 같은 것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어 다시 확인을 해보게 됐더니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다음은 이 부회장이 특검에서 한 진술이다.
"2016년 2월15일 청와대를 방문할 때 이용한 차량이 있었는데, 그 차량의 삼성전자 서초사옥 출입 기록을 떼 보니 오전 9시31분 출차했다가 11시42분 입차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래서 그날 일을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내가 대통령과 면담을 한 시간이 오전 10시30분부터 11시까지였다는 것이 생각이 나서 변호사들에게 말을 했더니 그 시간이면 특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업 계획안이 최씨에게서 대통령에게 전달될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한테 사업 계획안을 받을 수 없다고 하길래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날 최씨가 장씨로부터 사업 계획서를 받은 시간과 이 부회장이 청와대 안가를 떠난 시간 등에 비춰볼 때 최씨가 당시 계획서를 청와대로 보내고, 이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이 부회장에게 전달하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다음은 장씨가 2016년 2월15일 당시 자신의 통화기록을 참고해 2016년 12월30일 특검에서 한 진술이다.
"2016년 2월14일 오후 4시53분 최씨가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서 내가 같은날 오후 9시30분쯤 최씨와 통화를 했는데, 그 때 최씨가 내게 '내일 아침까지 그때 만들어 뒀던 영재센터 사업 계획안을 준비해라'고 말했다. 그래서 2월15일 오전 7시33분 영재센터 직원 김모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영재센터 계획안을 가지고 저희 집에 오라고 했고, 그날 아침 9시11분쯤 최씨가 내게 전화를 해서 문서 중에 내용을 수정하라고 지시했고, 9시22분쯤 김씨와 통화를 해서 저희 집에 오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이후 장씨는 택배기사를 불러 최씨의 지시대로 수정한 계획안을 최씨에게 보냈다. 그날 오전 10시쯤 장씨는 최씨에게 "경비실에 맡겨두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최씨는 10시16분쯤 "잘 받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장씨의 집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최씨의 집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이었다. 청담동에서 청와대까지는 차로 약 30분 거리다.

이 부회장이 11시쯤 청와대를 떠났다고 가정할 때 약 1시간 사이에 청담동에서 청와대로 사업 계획안이 배송된 뒤 박 전 대통령의 손을 거쳐 이 부회장에게 전달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게 이 부회장 측의 주장이다. 이 부회장이 청와대에서 사업 계획서를 받아 전달했다는 장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얘기다.

결국 장 전 사장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7년 8월1일 1심 재판에서 "내가 잘못된 추측으로 진술한 것 같다"며 "재판 과정에서 보니 이 부회장이 대통령으로부터 봉투를 받아 나에게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 "영재센터 자료라는 것이 청와대 외엔 받을 데가 없어서 이 부회장이 대통령 독대 후 받아왔겠구나 생각해 진술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전 사장은 '2016년 2월15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59)을 만난 것이냐' 등의 질문을 받자 "자료를 받아올 곳이 안종범 밖에 없어서 그날 잠깐 만나서 자료를 받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면서도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떠올리지 못했다. 결국 특검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사업 계획안을 전달했다는 공소 내용에서 '직접'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쪽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2017년 3월21일 검찰에서 "2016년 2월15일 이 부회장에게 무엇을 건넨 적이 없다"며 "최씨로부터 영재센터에 대해 이야기를 듣거나 계획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는 '2016. 2. 28. 동계영재센터 - 계약서 송부 9.7억'이라는 안 전 수석의 수첩 내용을 보고서도 "영재센터인가 그게 전혀 기억이 없는 일이고, 돈 문제도 내가 챙겨야 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씨/ 사진=김창현 기자

◇이모와 조카의 진실게임

결국 삼성은 2016년 3월2일 영재센터에 2차로 10억7800만원을 지원한다. 당시 장 전 사장은 이 같은 지원 경위를 최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장 전 사장은 2017년 1월9일 특검에서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했던 것은 맞다"며 "다만 1차 때 지원을 했기 때문에 2차 때도 그렇게 지원을 한 측면도 있다"고 진술했다.

김 사장도 2016년 12월29일 특검에서 "2016년 2월22일 이 전 상무로부터 '장 전 사장이 영재센터에 9억8000만원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했다. 그래서 이씨를 만났더니 5년간 18억원을 후원해 달라고 해서 그 내용을 장 전 사장에게 보고했더니 원래대로 9억8000만원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삼성은 1차 지원때와 마찬가지로 9억8000만원에 부가가치세 10%를 더해 총 10억7800만원을 지원했다.

그렇다면 영재센터는 최씨와 장씨 중 누가 주도해 만들고 운영한 걸까? 이모와 조카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일단 영재센터 설립 자금 5000만원은 최씨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최씨가 2016년 12월4일 검찰에서 한 진술을 보자. "빌려주는 개념이었는데 돈을 받지 않아 내가 그 돈을 부담한 셈이다. (중략)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였던 김동성씨(38)와 장씨가 동계스포츠 인재를 키우는 일을 하고 싶어했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에게 해줘서 나도 좋은 취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재센터 설립에 도움을 준 것이다." 김씨와 장씨는 과거 교제한 적이 있어 최씨도 김씨를 알고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김 전 차관을 통해 영재센터의 후원자를 물색하기도 했다. 최씨는 "내가 김 전 차관에게 영재센터에 도움을 줄 곳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런데 2주 정도가 지나도 연락이 없길래 장씨에게 김 전 차관과 연락을 해보라고 했는데, 김 전 차관이 연락이 와서 '삼성이 빙상연맹을 맡고 있으니 삼성에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자신이 삼성 측과 접촉을 해보겠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김 전 차관은 내가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 보니 나와 친해지려고 했던 것 같다"고도 했다.

반면 장씨는 2016년 11월20일 검찰에서 "최씨의 지시로 영재센터를 설립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5년 1월 김씨가 최씨에게 찾아온 모양이다. 그때 김씨가 동계스포츠 후학 양성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했다"며 "최씨가 김씨에게 나와 상의해 동계스포츠 후학 양성 프로그램의 계획을 잘 짜보라고 했고, 그것이 나중에 영재센터가 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후 장씨는 사단법인 설립 과정에서 필요한 정관 작성 등 필요한 서류 작업을 도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장씨는 김 전 차관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가 사업에서 빠지게 되자 최씨가 자신에게 영재센터를 만들라고 요구했다는 게 장씨의 주장이다. 장씨는 "(최씨의 요구에) 내가 이씨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메달리스트들을 섭외해 이사진을 구성했다"고 진술했다. 장씨는 영재센터가 삼성 등의 후원을 받은 경위에 대해서는 "지금 생각해보니 최씨가 대통령과 친한 사이라는 배경을 이용해 힘을 썼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씨는 2016년 11월17일 검찰에서 "2015년 2월 장씨를 만났는데 그날 장씨가 '영재센터'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하자고 했다"며 "장씨가 '이사진이 5명 필요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최소한 3명 정도는 있어야 쉽게 사단법인이 나온다고 한다. 스키 쪽 2명은 내가 확보해 놨으니까 너는 스케이트 쪽 메달리스트 3명만 구해달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모와 조카의 진실게임은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재판 중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최씨는 2017년 4월28일 자신과 장씨의 1심 재판에서 "장씨와 김씨가 좋은 의미에서 시작한 일이라 도와줬을 뿐인데 형사상 책임을 내가 지게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장씨는 삼성을 압박해 영재센터에 후원을 하게 한 혐의 등에 대해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영재센터에 대한 삼성의 후원금 강요에 대해서는 2심까지 무죄 판단을 받았다. 다만 최씨 등과 공모해 그랜드코리아레저(GKL)를 압박, 펜싱팀을 창단하게 하고 최씨가 운영하는 더블루K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게 한 혐의 등에 대해선 유죄 판단을 받아 1, 2심 모두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상고심 중이다.

그러나 삼성이 영재센터에 지원한 총 16억2800만원의 후원금은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게 현재까지 법원의 판단이다.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은 1심에서 영재센터 뇌물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특검이 주장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만큼 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1심 재판에서도 법원은 삼성의 영재센터 후원금은 뇌물로 볼 수 없고, 박 전 대통령 등이 직권을 남용해 삼성을 압박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현재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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