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주의 PPL] 예고된 폭탄, '제주도 예멘 난민'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된 정부 주도 '다문화·이민·난민' 정책…사회적 합의 절차 필요할 때

유동주 기자 2018.06.20 19:11
2016년 세종 정부청사 앞에서 개최된 전북 익산 할랄단지 반대 집회/사진=뉴스1

우리나라 최초의 귀화 국회의원이었던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의원은 잘 알려졌듯 필리핀 출신의 결혼 이주여성이다. 그는 의정활동기간 내내 다문화·이민·난민 정책에 주력했다.

그가 출마한 19대 총선 기간엔 당시 야당 중심으로 자질에 대한 검증요구가 거셌다. 이 과정에서 그를 향한 인종차별적 표현들이 인터넷에 쏟아졌고, 이는 당선 이후까지 이어졌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에선 귀화 외국인에 대한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혐오)라며 자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악플에 시달린 '다문화 상징' 이자스민

‘다문화’를 대표하는 국회 ‘비례’의원으로 뽑힌 그가 이민·난민 정책에 주력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대중의 '다문화'에 대한 적지 않은 불만이 이자스민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발현됐다. 그는 임기 내내 인신공격성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난민법·외국인근로자고용법·다문화가족지원법 개정안 등 이른바 ‘이자스민 법안’을 발의할 때마다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반대하는 내용이다. 유사한 내용이 민주당 의원에 의해 발의돼도 이자스민 전 의원에 비난이 집중됐다. 

이번에 제주도에서 벌어진 예멘인들의 집단 난민신청 사태로 관심이 커진 ‘난민법’ 개정안은 입법예고만 됐다하면 악플이 이어지는 '뜨거운 감자'다. 20대 국회에 계류된 개정안들도 19대에 임기만료 폐기된 이자스민 법안들처럼 반대 댓글이 각 법안마다 수천 건이 넘는다. 

여야 의원들이 고루 낸 개정안들은 대부분 난민을 더 받아 들이는 방향으로 보완하는 내용이다. 엄격하게 바꾸자는 개정안은 없다. 

입법 전 단계에선 아무리 관심이 큰 법안이라도 댓글 1000개를 넘기 힘들다. 그런데 다문화 관련 법안들엔 꾸준히 만 개 넘게 달린다. 그만큼 다문화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19대 국회에 제출됐던 난민법 개정안들, 의견수가 만 건이 넘는다/사진= 국회 입법예고시스템 캡쳐


◇할랄단지 무산시킨 '이슬람사원 괴담'

2016년 '이슬람사원 괴담‘ 사건이 있었다. “정부가 전북 익산에 50만평(165만㎡)의 이슬람사원을 짓고 있다"는 글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정부에 의해 전북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내에 추진되던 할랄(Halal) 식품 전용 단지 조성사업에 대한 반감이 조직적 반대운동으로 이어져 만들어진 괴담이다. 할랄 단지에 이슬람사원이 들어올 지 여부는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이었지만, 결국 기독교 단체 중심의 반대 집회가 이어졌고 정부는 할랄 단지를 포기했다.

이슬람사원 괴담 사태는 일견 종교간 다툼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종교와 관련없는 일반 누리꾼들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자스민 법안'에 대한 악플 폭탄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 주도 다문화 정책에 불만을 가져왔던 대중들의 ‘반대 의견'이 적극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 때다.

◇ 정부 주도 '다문화', 강요된 '이민·난민 정책’

다문화·이민·난민 정책이 보수·진보 정권 교체 여부와 관련없이 지속적으로 정부 주도로 추진돼 온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5년 8월 열린 '다문화 한국 10년의 정책과 실천 방안'이라는 학술대회에선 의미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17대~19대 국회에서 다문화가족지원과 외국인근로자 고용관련법안을 발의한 의원 63명 대부분이 '여당'의원이었다는 점이다. 17대 국회는 노무현, 18대는 이명박, 19대는 박근혜 정부와 기간이 대부분 겹친다.

보수·진보 정권 모두 관련 부처 협의와 여론 수렴 등 복잡한 정부입법 절차를 생략하고 여당의원을 통해 청부 의원입법으로 쉽게 다문화 정책을 추진해왔다는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 일반 대중의 뜻을 수렴하는 절차는 생략됐다. 공청회도 거의 없었다.

보수 정당이 다문화 관련 법안을 진보 정당보다 더 많이 낸 것도 미국·유럽과 다른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다. 친기업 성향이 강한 보수 정당에 의한 ‘싼 노동력 확보’ 차원의 접근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문화 비례대표 의원이 보수 정당에서 유일하게 배출됐었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에서 '다문화'가 갖는 독특한 지위를 엿볼 수 있다. 미국·유럽의 트럼프나 르펜 등에서 보듯 대개 보수당이나 우파 정치인들은 '반(反)다문화'를 내건다.

난민·이민자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 배경에 ‘지배와 착취’ 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없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동일 국적이나 인종의 집단화가 일부 지역을 고립시키고 게토화시키는 건 아닌지도 살펴볼 시기다. 이미 수도권 일부 지역은 범죄 영화 소재로 쓰일 정도로 게토화됐다.


자료=법무부


◇대중의 ' 반(反)다문화' 감정…모른 척 방치할건가

이슬람 사원 괴담에 이어 벌어진 이번 예멘 난민 사태는 '정부 주도' 다문화 정책이 사실상 효력을 다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앞으론 다문화 정책 추진에 앞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민들 사이에 엄존하는 '반(反)다문화' 감정을 더 이상 모른 척 하고 방치할 순 없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18만 명으로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 5178만 명의 약 4.2%에 달했다. 충청남도 인구 211만 명(광역자치단체 중 인구수 8위)보다 많다. 광역단체 한 지역을 외국인만으로도 채울 수 있을 정도다.

정책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으려는 노력없이 정부 주도의 일방통행만 계속된다면 한국판 '트럼프·르펜'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난민네트워크 및 난민인권센터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광장 앞에서 세계 난민의 날 기념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민국 난민 제도에 대한 정부의 해명과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자스민 "사회적 합의 없인 어렵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다문화'라는 표현 자체가 계급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없애고 싶어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난민과 이민 정책 모두를 아우르는 용어조차 제대로 정리가 안 돼 있다. '다문화'란 표현이 정부 주도로 쓰이곤 있지만 ‘이민자정책', '이주민대책'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관련 법률도 재한외국인처우법, 난민법, 국적법 등으로 산재돼 있다.

예멘 난민 사태를 계기로 난민법을 통해 이주민들에 대한 장벽을 낮출지 높일지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자스민 전 의원도 "사회적 합의가 없는 한 이민 국가로 나아가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 토로했다. 4년 간 '다문화' 비례대표로 온갖 수모를 감수하며 일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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