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일반

[친절한 판례氏] 법원도 때론 실수한다

황국상 기자 2018.06.26 08:35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법원도 때론 실수를 한다. 어떤 사건을 맡아서 처리해야 할지, 소송의 한 쪽 당사자가 과연 소송 상대방으로서 싸워야 할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판단에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대법원에 이르러서야 피고가 소송 당사자 자격이 있는지, 해당 사건을 어느 법원에서 맡는 게 옳은 지가 정해졌던 판결(2016년 10월13일 선고, 2016다221658)이 있어 소개한다. 

A씨는 B씨에게 다세대 주택 신축공사를 맡겼다. 공사를 수탁받은 B씨는 자신의 명의로 고용보험료와 산업재해보험료를 내야 했는데 A씨의 명의로 고용보험·산재보험 관계 성립신고서를 작성,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 이 보험료의 징수나 체납관리는 건강보험공단이 맡게 됐다. 고용산재보험료 징수법상 보험사업의 주된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은 근로복지공단이지만 보험료 체납자 관리 등 징수업무는 건보공단의 업무였기 때문이다. 

A씨는 고용·산재보험료 중 일부인 1100만원을 건보공단에 냈는데 건보공단은 체납보험료 800여만원을 추가로 내라고 A씨에게 독촉했다.

A씨는 건보공단을 상대로 한 소송을 통해 "B씨가 보험관계성립 신고서를 위조해서 A씨 명의로 제출했던 것임에도 근로복지공단이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다"며 "위조된 신고서에 의한 보험료 부과는 무효이고 이미 납부한 보험료도 부당이득이니 건보공단이 이를 반환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건보공단도 "보험료의 과오납으로 인한 부당이득 문제는 근로복지공단과 다퉈야 할 문제"라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보험료 징수에 관한 업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자에 불과한 건보공단은 피고 적격이 없다"고 반박했다. A씨가 싸워야 할 당사자는 건보공단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이라는 것이다.

1심과 2심은 A씨 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을 맡은 지방법원의 민사단독 판사는 "도급인(A씨)과 수급인(B씨) 사이에서 수급인을 사업주로 본다는 규정이 없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이행을 구하는 소송에서는 원고의 청구 자체로 당사자 적격이 판가름되고 그 판단은 청구의 옳고 그름의 판단에 흡수되는 것"이라며 "자기의 급부 청구권을 주장하는 자가 정당한 원고이고 의무자로 주장된 자가 정당한 피고"라고 했다. 물론 A씨의 패소 판결은 유지된 상태였다.

같은 법원의 항소심 재판부가 맡아 진행한 2심에서도 "B씨가 실제 납부 의무자"라는 A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에서는 건보공단의 주장은 아예 논의되지 않았다. 건보공단이 1심에서 완전히 승소해 별도로 항소하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3심에서는 판단이 아예 뒤집혔다. 1,2심을 맡은 지방법원이 애초에 재판 배정을 잘못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대법원은 쌍방 당사자의 주장이 없었음에도 직권으로 "고용보험, 산재보험의 보험료 납부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소송은 공법상 법률관계를 다투는 소송으로 공법상 당사자 소송"이라며 "근로복지공단이 피고 자격을 가짐에도 지방법원 단독판사가 이 소송을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으로만 보고 판단을 누락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또 "이번 소송은 행정소송인 공법상 당사자 소송과 행정소송법에서 규정한 부당이득반환 민사소송이 병합돼 제기된 건"이라며 "항소심을 관할법원인 서울고등법원에 이송했어야 옳지만 원심(지방법원 2심)이 행정사건 관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건보공단은 단지 보험료의 징수업무만 수행하는 데 불과하고 사업주가 각 보험료의 납부의무를 부담하는 상대방은 근로복지공단"이라며 "법원이 원고로 하여금 정당한 피고로 경정(변경해서 바로 잡는다는 의미)하도록 해서 소송을 진행했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봤다.

이어 "1심에서는 A씨 명의의 보험관계성립신고서가 위조된 것인지 여부 등을 추가로 심리해 이 사건 사업장의 사업주가 누구인지를 확정하고, 이를 전제로 이 사건 보험료 납부의무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했어야 한다"며 "원심은 이를 간과하고 B씨가 사업주임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A씨의 주장을 배척한 잘못이 있다"고 했다.

한편 A씨와 건보공단의 사건은 서울고등법원 민사재판부로 일단 이송이 됐다. 서울고법은 이 사건을 행정 재판부로 넘겼다. 대법원의 파기이송 후 새로 피고가 된 근로복지공단은 A씨와 화해로 사건을 종결했다.

◇관련조항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제4조(보험사업의 수행주체) 「고용보험법」 및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험사업에 관하여 이 법에서 정한 사항은 고용노동부장관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0조에 따른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라 한다)이 수행한다. 다만,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징수업무는 「국민건강보험법」 제13조에 따른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강보험공단"이라 한다)이 고용노동부장관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수행한다.
1. 보험료등(제17조 및 제19조에 따른 개산보험료 및 확정보험료, 제26조에 따른 징수금은 제외한다)의 고지 및 수납
2. 보험료등의 체납관리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의2(보험료의 부과ㆍ징수)
① 제13조제1항에 따른 보험료는 공단이 매월 부과하고, 건강보험공단이 이를 징수한다.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건설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의 경우에는 제17조 및 제19조에 따른다.

행정소송법
제3조(행정소송의 종류) 행정소송은 다음의 네가지로 구분한다.
1. 항고소송: 행정청의 처분등이나 부작위에 대하여 제기하는 소송
2. 당사자소송: 행정청의 처분등을 원인으로 하는 법률관계에 관한 소송 그 밖에 공법상의 법률관계에 관한 소송으로서 그 법률관계의 한쪽 당사자를 피고로 하는 소송
3. 민중소송: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기관이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때에 직접 자기의 법률상 이익과 관계없이 그 시정을 구하기 위하여 제기하는 소송
4. 기관소송: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기관상호간에 있어서의 권한의 존부 또는 그 행사에 관한 다툼이 있을 때에 이에 대하여 제기하는 소송. 다만, 헌법재판소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하여 헌법재판소의 관장사항으로 되는 소송은 제외한다.

행정소송법
제10조(관련청구소송의 이송 및 병합)
① 취소소송과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소송(이하 "관련청구소송"이라 한다)이 각각 다른 법원에 계속되고 있는 경우에 관련청구소송이 계속된 법원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에 의하여 이를 취소소송이 계속된 법원으로 이송할 수 있다.
1. 당해 처분등과 관련되는 손해배상·부당이득반환·원상회복등 청구소송
2. 당해 처분등과 관련되는 취소소송
② 취소소송에는 사실심의 변론종결시까지 관련청구소송을 병합하거나 피고외의 자를 상대로 한 관련청구소송을 취소소송이 계속된 법원에 병합하여 제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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