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관계

[친절한 판례氏] "아픈 남편이 회사 등산 갔다가 그만…"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 관계 없더라도 '업무상 재해' 인정한 사례

박윤정 (변호사) 기자 2018.07.08 05:05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업무상 질병은 업무수행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럼 평소 지병을 앓고 있던 근로자가 본래의 업무가 아닌 회사가 주최한 등산 행사에 참석했다가 지병이 악화돼 사망한 것이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최근 대법원은 회사가 주최한 산행 도중 지병이 악화돼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를 지급해달라고 한 소송에서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 관계가 없더라도 행사나 행사준비에서 비롯된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을 악화시켰다면 업무와 질병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시하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되돌려 보냈습니다(대법원 2018. 6. 19. 선고 2017두35097 판결).


평소 비만, 고혈압, 고지혈증을 앓고 있던 A씨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겨울 산행에 참석했다가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이에 A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이에 A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심은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업무상 질병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이거나 업무상 부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거나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사망의 원인된 질병이 업무로 인한 것이어야 하는데, A씨는 평소 고혈압 등을 앓고 있었고 산행은 질병을 유발하는 업무수행도 아니므로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A씨 유족의 손을 들어준 거죠.

 

대법원은 △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업무와 질병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것”이고, △ “여기서 말하는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에는 근로자 본래의 업무에서 비롯된 것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에서 비롯된 과로나 스트레스도 포함된다”는 전제하에, "평소 등산을 하지 않던 A씨가 산행으로 인하여 상당한 과로 또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A씨가 지병을 앓고 있기는 하였으나 평소 별 이상 없이 근무해온 점에 비추어 겨울철 등산이 A씨의 기존 질병 악화시켜 급성 심장질환으로 발현되었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이 같은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하고, △“평소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되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된 때에도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하며, 이 때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의 평균인이 아닌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여 지병이 있던 근로자가 지병의 악화로 사망한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줌과 동시에 인과관계에 관한 근로자의 입증책임을 상당부분 경감하여 주는 기존의 판시를 재확인했습니다.

 

◇ 관련 규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①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업무상 사고

가.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나 그에 따르는 행위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

나. 사업주가 제공한 시설물 등을 이용하던 중 그 시설물 등의 결함이나 관리소홀로 발생한 사고

라.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 중에 발생한 사고

마. 휴게시간 중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행위로 발생한 사고

바.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

2. 업무상 질병

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물리적 인자(因子), 화학물질, 분진, 병원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 등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

나. 업무상 부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

다.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

3. 출퇴근 재해

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

나. 그 밖에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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