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판례氏] 법인도 '사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까

대법 "법인의 사기 피해자 여부의 판단 기준, 최종 의사결정권자"

황국상 기자 2018.07.10 14:06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다른 사람을 속여서(기망) 재산 처분을 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범죄가 '사기죄'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속이는 자, 속은 자, 속은 자의 재산 처분 행위, 속이는 자의 이익 취득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는 게 대법원이 내세운 기준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법인·단체도 사기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까? 법인·단체가 피해자인 경우에 사기죄 성립 기준을 내세운 대법원 판례(2017년 9월26일 선고, 2017도8449)가 있어 소개한다.

A씨는 보유 중인 건물 2채의 담보가치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금융사로부터 대출금을 가로채려는 범행을 기획했다. A씨는 실제 건물 임차인들 다수가 전세 계약으로 입주했음에도 월세 계약인 것처럼 임대차 계약서를 위조했다. 가짜 서류를 만들어서 임차인 다수가 무상으로 거주하고 있는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임차인들에게 돌려줘야 할 보증금이 적을수록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A씨는 이같은 방식으로 3개 금융사로부터 72억원의 대출을 받아낸 혐의를 받았다. A씨는 결국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사기)과 사문서 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A씨는 2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을 받았다.

A씨는 재판이 진행되던 중 "금융사 중 한 곳의 직원에게는 담보가치를 속여서 허위로 대출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했다. "불법 대출 피해 금융사의 직원이 허위 대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 금융사에 대해서는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A씨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같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기죄의 피해자가 법인이나 단체인 경우 기망행위로 인한 착오 등이 있었는지 여부는 법인·단체의 대표 등 최종 의사결정권자 또는 내부 권한 위임에 따라 실질적으로 법인의 의사를 결정하고 처분할 권한이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법인·단체의 대표 등이 기망행위자와 동일인이거나 기망행위자와 공모하는 등 이미 기망행위임을 알고 있었던 경우 기망행위로 인한 법인의 착오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이 경우에는 사안에 따라 업무상 횡령·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사기죄가 성립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 법인·단체의 업무를 처리하는 실무자인 일반 직원이나 구성원 등이 기망행위임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법인·단체의 대표 등이 기망행위임을 알지 못한 채 착오에 빠져 처분행위에 이른 경우라면 사기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의 주장대로 피해 금융사 한 곳의 직원이 이미 불법대출임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대출이 지점장 등의 결재와 대출 심사위원회 심사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 해당 금융사에 대한 A씨의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얘기다. 물론 법정에 나온 해당 직원의 진술은 A씨 주장과 큰 차이가 있었다. A씨에게는 징역 3년이 확정됐다.

◇관련조항
형법
제347조(사기)
①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형법
제355조(횡령, 배임)
①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형법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제355조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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