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이 10배 비싼데"…좀비가 된 '조정' 제도

[the L 리포트] 소송 전 자발적 조정신청 고작 1%…"국민들이 조정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몰라"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8.07.16 09:23

떼인 돈을 받을 때 등 분쟁이 벌어졌을 때 해결 방법이 소송만 있는 건 아니다. 소송보다 값싸고 신속한 '조정'이란 제도도 있다. 

그러나 소송에 들어가기 전 당사자들이 스스로 조정을 신청하는 경우는 전체의 약 1%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매년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 대체적 분쟁해결제도인 조정이 홍보와 인식 부족으로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좀비'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조정신청 건수는 2014년 1745건에서 2015년 1703건, 2016년 1415건, 2017년 1114건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조정신청 감소에 문제의식을 느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소송절차개선 연구협의회에서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들을 상대로 "조정을 적극 신청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은 당시 "조정신청 수수료는 소송인지액 대비 10%에 불과하다"며 "조정이 불성립할 경우 소송절차로 이행되며 이 경우 조정신청 당시 소가 제기된 것으로 봐서 소멸시효의 중단 등에 있어서도 불이익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송을 제기하기 전 조정신청제도를 이용하더라도 분쟁해결이 지연될 우려가 적다"고도 했다.

조정이란 당사자들이 합의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중립적인 제3자인 조정인이 개입하는 분쟁해결 방식이다. 조정이 성립돼 당사자 사이에 합의된 사항을 조서에 기재할 경우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더라도 법원에서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내리고 당사자들의 이의가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이란 당사자 간의 명시적인 합의가 없을 경우 조정기관이 사건의 공평한 해결을 위해 내리는 일종의 '중재안'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조정은 소송과 마찬가지로 종국적인 분쟁해결수단"이라고 말했다.

소송보다 싸고 빠르면서도 소송과 다름없는 효과를 내는 조정인데도 활용은 부진하다. 지난해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체 사건 대비 조정사건(조정으로 사건이 종결된 사건)의 비율은 10%를 밑돈다. 2015년 법원에 접수된 본안사건 수는 100만6592건이었지만, 이 중 조정건수는 9만4000여건으로 전체의 9.35%에 그쳤다. 

그나마 조정건수의 대부분은 소송이 제기된 후 법원에서 조정에 회부한 사건들이다. 전체 사건 가운데 소송 전에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조정을 신청한 사건의 비율은 2011년 0.78%에서 2012년 0.78%, 2013년 0.91%, 2014년 0.98%, 2015년 0.99%로 약 1%에 그친다. 

조정제도의 활용이 부진한 주된 원인은 홍보와 인식의 부족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조정제도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9월 '민사조정제도의 입법적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조정제도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조정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조차도 조정절차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변호사는 "종국적으로 조정이 불성립될 경우 재차 소송으로 가게 돼 분쟁해결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변회는 법원의 조정신청 독려에 대해 "조정신청을 하더라도 조정이 잘 성립되지 않고 소송으로 이행돼 분쟁해결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조정신청제도를 활용하는 경우 통계적으로 어느 정도 신속한 진행이 가능한지, 즉 조기조정회부에 따라 얼마나 빨리 조정기일이 잡힐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자료를 공개해달라"고 답변했다.

법원이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당사자 사이에서 조정이 이뤄지는 경우보다 많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현재 조정담당판사나 조정위원회를 통해 이뤄지는 조정사건의 경우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으로 처리된 사건 수가 조정 성립건수보다 많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사조정제도가 당사자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조정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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