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 해볼까?" 현실은…

[서초동살롱] "상대방 변호사 없으면 솔직히 내가 승소할 확률 높다"…'국선대리인 도입' 필요

한정수 기자 2018.07.16 08:21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법정에서 대리인 없이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무슨 증거자료가 필요한지 일일이 설명드리고, 웬만하면 전문가 도움을 받아보라고 말씀을 드리죠. 혼자서도 잘 준비를 해 오시는 분들이 있지만 대개는 다짜고짜 화만 내시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사건들이 한두건이 아닌데…재판하기 힘들 때가 많죠."

민사 소액재판을 맡아 본 경험이 있는 한 재경지법 판사의 말입니다. 최근 법조계에 따르면 변호인이나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고 재판에 임하는 '나홀로 소송족(族)'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의 도움 없이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죠. 
여기서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변호사는 직업이고,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을 위해 변론을 하는 변호사는 '변호인'이라고 부릅니다. 민사나 행정 재판에서는 '대리인'이라고 부르죠.

법원 등에 따르면 민사 1심을 기준으로 원고와 피고 중 한 쪽 이상이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은 '나홀로 소송'의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74%에 달했습니다. 소송금액이 3000만원 이하인 민사 소액재판의 1심은 2016년 전국 67만7024건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56만8783건(84%)이 원·피고 중 한쪽 이상이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사재판 뿐 아니라 형사, 행정 재판에서도 변호인이나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하네요.

일선 판사 등을 포함한 법조계 관계자들은 사건 당사자가 철저한 준비를 했을 때만 나홀로 소송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법정 안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어렵고,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 역시 특정한 절차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큰 준비 없이 재판에 참석했다가 다음에 열릴 재판까지 증거자료와 주장을 준비해서 오라며 1∼2분 만에 재판이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억울한 일이 생겨 법원을 찾았는데 이런 식으로 재판이 끝나버리면 황당하겠죠.

또 다른 판사는 "민사재판의 경우 양 쪽의 주장을 듣고 증거자료를 모아 판결을 내려야 하는데 자료를 제때 제출하는 분들이 많지 않다"며 "심리를 제대로 시작하기조차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원고와 피고가 법정 안에서 판사에게 입장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고 다투는 경우도 많다"며 "이렇게 되면 원활한 재판이 어렵게 된다. 대리인이 없는 재판은 효율성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변호사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리인이 없는 상대방과 민사 소송을 해 승소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솔직히 상대방이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았을 때 내가 승소할 확률이 높다"며 "그런 재판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다름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법리적인 부분에 대한 공방이 이뤄지고 그에 대한 판단을 공정하게 받는 것이 재판인데, 그렇게 되지 않는 재판들이 많으니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소송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요. 역시 돈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민사 소액재판의 경우 소송금액이 3000만원 이하로 정해져 있는 만큼 대개 몇백만원을 두고서 발생하는 다툼들이 재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건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보통 100만원 이상이 든다고 합니다. 이길지 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큰 돈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형사재판의 국선변호인 제도를 민사재판에서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변호사를 강제로 참여시켜 재판이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당장 1심부터 국선대리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 아래 상고심인 3심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적용범위를 넓혀가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편 지금도 각 법원에서 운영하는 소송구조제도를 활용하면 대리인 선임에 드는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습니다. 법원에 소송구조를 신청하고 허가를 받으면 소송구조 지정 변호사를 찾아 사건을 맡아달라고 하면 됩니다. 법원에서는 해당 변호사에게 100만원 이하의 보수를 지급합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예산 부족 등으로 관련 심사가 까다롭지만 변호사비가 부담스러운 당사자들 입장에선 소송구조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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