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주의 PPL] 국세청은 변호사가 지난해 한 일을 알고 있다

변호사 수임내역은 모두 '지방변호사회 경유제도' 통해 과세당국 제출…'건수' 축소 탈세는 사실상 불가능

유동주 기자 2018.07.17 09:19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퇴임식을 마친 후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자신의 수임내역을 모아 국세청에 통보하고 세무조사를 하게 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던 변협을 압박하기 위해 대법원이 협회장 탈세 여부를 과세당국에 조사하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변호사업계의 관심은 실제로 이로 인해 세무조사가 실시됐는지 여부에 쏠려 있다. 법원이 수임내역을 과세당국에 전달해 특정 변호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요구할 수 있느냐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법조계와 과세당국 등에 따르면 설령 대법원이 국세청에 수임내역을 전달했다고 해도 탈세 조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세청은 이미 이 자료들을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수임내역, 지방변호사회 통해 모두 과세당국에 보고
 
국세청은 관련 법령에 따라 변호사들의 수임내역을 이미 확보해 놓고 있다. '경유' 제도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변호사법 제29조에 따라 변호인선임서 등을 법원·검찰·경찰 등 공공기관에 제출할 때 사전에 소속 지방변호사회를 '경유'해야 한다. '경유'는 변호인선임서 등을 제출할 때 지방회에 경유회비를 납부하고 경유증표를 부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경유증표를 부착·사용한 경우에는 그 사용일부터 7일 이내에 사용내역을 소속회의 경유업무프로그램에 입력·신고해야 한다.

이런 경유절차를 어기거나 누락시키면 탈세로 의심받게 된다. 변호사는 변호사법 제28조의 2에 따라 매년 1월 말까지 전년도에 처리한 수임사건 건수와 수임액을 소속 지방회에 보고해야 한다. 또 법률사건 또는 법률사무에 관한 수임계약을 체결한 때부터 1개월 이내에 수임장부를 작성하고, 작성일로부터 3년간 법률사무소에 보관해야 한다.

지방회는 이렇게 취합된 자료를 과세당국인 국세청(관내 세무서)에 매년 3월쯤 제출한다. 결국 국세청은 변호사나 개별 로펌의 수임내역을 이미 다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전화변론이나 선임계를 내지 않고 몰래 처리하는 식의 편법이 아니면 '건수'를 속이는 식의 탈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변호사나 로펌에서 탈세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임 건수는 속일 수 없지만 '수임액'을 줄이는 축소신고는 가능하다. 성과보수를 신고하지 않거나 간단한 자문이나 소송서류를 써 주는 법률사무, 상담료를 현금으로 받고 누락시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하 전 협회장의 탈세를 의심해 세무조사를 받게 하기 위해 법원이 조회할 수 있는 '하창우 변호사 수임내역'을 국세청에 제공하자는 방안을 계획했다면 이는 헛수고나 다름없다. 대법원이 갖고 있는 수임내역이라고 해봐야 지방변호사회를 통해 세무서에 신고된 건수와 같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법원행정처는 왜 그런 계획을 세웠을까? 당시 법원행정처는 변호사들의 수임내역이 모두 과세당국에 보고된다는 사실을 간과했거나 몰랐을 수 있다. 변호사 업무를 해 보지 않는 판사들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현재 개업중인 변호사들 중에도 자신의 수임건수가 과세당국에 제출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상당수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 출석하기 위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구치감에서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법원이 아는 수임내역은 국세청도 알고 있어

법적으로 지방변호사회 경유제도가 생긴 건 2000년이다. 그해 1월 변호사법이 개정되면서 수임장부 작성·보관제도(제28조) 및 변호인선임서 등의 지방변호사회 경유제도(제29조)가 도입됐다. 1998년 의정부 법조비리,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 등을 계기로 사건수임 비리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다. 그 이전에 업계 회칙상으로만 경유제도가 있었다. 

2007년엔 수임사건수 및 수임액 보고제도(제28조의2), '특정변호사'의 수임 자료 등 제출제도(제89조의5)가 추가됐다. 변호사법에서의 '특정변호사'란 6개월간 형사사건 수임건수가 30건이상으로 소속회 평균의 2.5배 이상인 경우 등 형사 수임건수가 많은 변호사를 말한다. 형사사건을 평균보다 과다하게 수임한 경우 비리 가능성이 높을 수 있는 만큼 면밀히 살펴보자는 취지다.

결국 대법원이 어떤 변호사의 세무조사를 국세청에 의뢰하면서 수임내역을 넘겨주는 식의 방법은 통할 수 없다. 경찰·검찰 단계에서 종료되는 형사사건은 변호사 수입에 포함돼도 법원에선 알 수도 없다. 법원이 확보 가능한 수임내역은 변호사 수임건수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 아니라 과세당국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다.

변호사법에 경유 조항 등이 명시된 후 변호사가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는 드물다. 과거처럼 대규모 탈세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간혹 변호사 비리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경우엔 '탈세'도 함께 문제가 되기도 한다. 2016년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에서 최유정·홍만표 변호사는 현금영수증 발행 및 세무신고를 하지 않는 등의 탈세가 인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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