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친절한 판례氏] '고용보장' 합의해 놓고 정리해고 통보?

대법 "경영권 해당사항이라도 노사 합의로 해고 제한 가능"

황국상 기자 2018.07.17 09:19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은 대개 기업의 사측이 '경영상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노사 합의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에서도 '경영상 이유'에 대해 기업에 상당한 재량을 부여하곤 한다.

만약 노사가 합의해 정리해고를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음에도 사측이 이를 어기고 해고를 했다면 그 효력은 어떻게 될까. 정리해고를 제한하기로 한 노사 합의의 효력에 대해 판시한 대법원 판례(2014년 3월27일 선고, 2011두20406)가 있어 소개한다.

경기도에 사업장을 둔 외국계 기업인 A사는 2008년 사업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근로자들과 "2008년 7월 기준 현 인원에 대해 고용보장을 확약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합의서에는 고용보장 내용 외에도 주차·휴게공간에 대한 약속과 출퇴근 수당, 고용안전 등에 대한 제반 사항까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A사는 합의서가 체결된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2009년 5월에 당시 기준으로 근속 연수가 2년에서 11년에 달하는 근로자 19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에 근로자들은 지방·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A사 실적이 설립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고 △정리해고 전에 사무직에 대한 희망 퇴직, 공장 통폐합, 퇴직금 중간정산 일시 중지, 학자금 지급 유보 등 해고범위 최소화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으며 △정리해고 시행 90일 전에 해당 사실을 통보했다는 등 이유를 들어 근로자들의 신청을 기각했다. 1심 법원에서도 이같은 판단이 유지돼 근로자들이 패소했다.

그러나 2심은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A사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A사와 근로자들 사이의 고용보장 확약서는 근로자들에게 근로관계를 종료할 정도의 귀책사유가 없다면 A사 스스로 인위적 구조조정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하지 않겠다고 확약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봤다.

또 "최초 확약서 작성 후 2009년 1월에도 A사는 경영위기 타개를 위한 휴업에 근로자들이 협조하자 '회사는 향후 인위적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고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확약한다'는 내용의 확약서까지 작성해줬다"며 "고용확약 부분은 단체협약의 규범적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고 A사도 이를 준수할 의도를 표명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이어 "2009년에는 경기침체 저점을 지나면서 실적이 회복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해고 이후인 2009년 9월에는 월별 목표 달성비율이 168%에 이르는 등 급속한 실적개선을 보였다"며 "A사가 합의서 효력을 유지하는 게 객관적으로 부당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 실시 여부는 경영 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 사항으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도 "사용자의 경영권에 해당하는 사항이라도 노사는 임의로 단체교섭을 진행해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그 내용이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또 "사용자가 노조와 협상에 따라 정리해고를 제한하기로 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단체협약이 강행법규 등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는 근로조건이나 근로자 대우에 대해 정한 것으로서 그에 반해 이뤄지는 정리해고는 원칙적으로 정당한 해고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단체협약을 체결할 당시의 사정이 현저하게 변경돼 사용자에게 그와 같은 단체협약의 이행을 강요한다면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부당한 결과에 이르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단체협약에 의한 제한에서 벗어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했다. 

◇관련 규정
근로기준법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①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이 경우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
② 제1항의 경우에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이 경우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의 기준 등에 관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말한다. 이하 "근로자대표"라 한다)에 해고를 하려는 날의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한다.
④ 사용자는 제1항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인원을 해고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⑤ 사용자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요건을 갖추어 근로자를 해고한 경우에는 제23조제1항에 따른 정당한 이유가 있는 해고를 한 것으로 본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31조(단체협약의 작성)
① 단체협약은 서면으로 작성하여 당사자 쌍방이 서명 또는 날인하여야 한다. 
② 단체협약의 당사자는 단체협약의 체결일부터 15일 이내에 이를 행정관청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③ 행정관청은 단체협약중 위법한 내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그 시정을 명할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33조(기준의 효력)
①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로 한다.
② 근로계약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 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무효로 된 부분은 단체협약에 정한 기준에 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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