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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길텐데 돈만 날리면"…재판을 피하는 방법

[the L 법률상담]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 땐 재판 전에 소송 각하될 수도

박윤정 (변호사) 기자 2018.07.23 05:05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누군가 소송을 걸어왔는데, 재판에서 이길 게 뻔하고 상대방은 내게 소송비를 물어줄 형편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행법상 인지대와 변호사비 등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은 패소한 사람이 부담하게 돼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98조). 그러나 패소한 사람의 재산이 충분하지 않아 이기고도 소송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원고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하며 소를 제기해 결국 패소했음에도 돈이 없다고 나올 경우 피고로서는 분쟁에 휘말린 것도 억울한데 소송비용만 버리는 황당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사소송법은 제117조 제1항에서 ‘원고가 대한민국에 주소·사무소와 영업소를 두지 아니한 때 또는 소장·준비서면, 그 밖의 소송기록에 의하여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때 등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제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피고의 신청이 있으면 법원은 원고에게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도록 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고에게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제공 신청권을 부여함으로써 원고의 부당한 소제기를 막고 나아가 추후 승소했을 때 피고가 원활하게 소송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청을 받은 법원이 보기에도 원고의 소제기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은 원고에게 판결 전에 소송비용을 미리 담보로 내어놓으라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만약 원고가 법원이 정한 기간 내에 담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법원은 본격적인 변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판결로 소를 조기에 각하하게 됩니다. 홧김에 혹은 오로지 피고를 괴롭히기 위해 소를 제기한 원고들은 금전 지출이 수반되는 담보제공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므로 대체로 이 과정에서 부당한 소송을 걸러낼 수 있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위와 같이 원고에게 담보를 제공할 사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피고가 본안에 관하여 변론하는 등 응소를 하면 담보제공을 신청하지 못하게 되므로(동법 제118조),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은 제1심에서 문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피고가 항소심까지 가서야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을 한 경우에도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권을 인정한 사례가 있어 소개합니다.

 

대법원은 피고가 항소심에 이르러 처음으로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을 한 사건에서 피고가 제1심 판결 이후에 비로소 원고의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는 걸 알게 됐으므로 피고가 항소심에서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권을 상실하지 않았다고 봐 피고의 담보제공 신청을 각하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이를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대법원 2017마63 결정).

 

A 회사는 근로자였던 B씨로부터 2007. 1부터 2009. 12.까지의 임금 중 최저임금 미달분 등을 지급해달라는 소송을 당했습니다. 제1심에서 약 1년간 2차례 변론기일이 열렸고 그 결과 B씨의 임금채권은 이미 3년의 소멸시효 기간이 지난 것이 명백해 B씨의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B씨는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고, A 회사는 제2심에서 변호인을 선임하여 제2심 재판부에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을 했습니다.

 

제2심 재판부는 A 회사가 제1심에서 B씨로부터 소장을 받았을 때 이미 B씨에게 소송비용 담보제공 사유가 있음을 알았다고 전제한 후 A 회사가 제1심에서 변론한 이상 항소심에서 새롭게 담보제공 원인이 발생했다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A회사의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A회사의 담보제공 신청을 받아준 것입니다.

대법원은 A회사가 제1심 당시에는 B씨의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는 것을 몰랐을 거라 봤습니다. 그러나 B씨의 임금채권이 시효소멸했다는 것이 역수상 명백하다는 이유로 제1심에서 B씨의 청구가 기각됐음에도 불구하고 B씨의 항소이유서를 보면 시효소멸에 대한 항변은 찾을 수 없으므로 A회사는 제2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B씨의 청구가 이유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 봤습니다. 더구나 A회사가 제2심에서 처음으로 변호인을 선임했으므로 소송비용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 예상되므로 항소심에서 새롭게 담보제공의 원인이 발생했다고도 했습니다.

 

원고의 청구가 명백하게 문제 있지 않는 이상 법원이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을 받아주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악성 민원인들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명목으로 회사와 임직원들까지 반복적으로 소송을 당할 때 회사가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면 부당한 소송으로부터 조기에 해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관련규정

민사소송법

제117조(담보제공의무)

① 원고가 대한민국에 주소·사무소와 영업소를 두지 아니한 때 또는 소장·준비서면, 그 밖의 소송기록에 의하여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때 등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제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피고의 신청이 있으면 법원은 원고에게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도록 명하여야 한다. 담보가 부족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② 제1항의 경우에 법원은 직권으로 원고에게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도록 명할 수 있다.

③청구의 일부에 대하여 다툼이 없는 경우에는 그 액수가 담보로 충분하면 제1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118조(소송에 응함으로 말미암은 신청권의 상실)

담보를 제공할 사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피고가 본안에 관하여 변론하거나 변론준비기일에서 진술한 경우에는 담보제공을 신청하지 못한다.

 

제119조(피고의 거부권)

담보제공을 신청한 피고는 원고가 담보를 제공할 때까지 소송에 응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제120조(담보제공결정)

①법원은 담보를 제공하도록 명하는 결정에서 담보액과 담보제공의 기간을 정하여야 한다.

②담보액은 피고가 각 심급에서 지출할 비용의 총액을 표준으로 하여 정하여야 한다.

 

제121조(불복신청)

담보제공신청에 관한 결정에 대하여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

 

제122조(담보제공방식)

담보의 제공은 금전 또는 법원이 인정하는 유가증권을 공탁(供託)하거나, 대법원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급을 보증하겠다는 위탁계약을 맺은 문서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한다. 다만, 당사자들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있으면 그에 따른다.

 

제123조(담보물에 대한 피고의 권리)

피고는 소송비용에 관하여 제122조의 규정에 따른 담보물에 대하여 질권자와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

 

제124조(담보를 제공하지 아니한 효과)

담보를 제공하여야 할 기간 이내에 원고가 이를 제공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법원은 변론없이 판결로 소를 각하할 수 있다. 다만, 판결하기 전에 담보를 제공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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