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성폭행·고문·입학거부 끝에 '남성 혐오자'가 된 천재 여성 화가…'남혐·여혐' 악순환은 누구를 위한 것?

이상배 기자 2018.07.26 05:00

퀴즈 하나. 클림트, 보티첼리, 카라바조, 젠틸레스키. 이 화가들의 공통점은?

상징주의, 르네상스, 바로크 등 시대와 화풍이 저마다 다른 화가들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유디트'(Judith)란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구약성서 외경(外經)에 등장하는 유디트는 유태인들이 사는 베투리아 마을의 과부였다. 기원전 7∼9세기 중동의 대제국이었던 아시리아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직접 찾아갔다. 그리곤 그를 유혹해 함께 밤을 보낸 뒤 자고 있는 그의 목을 잘라 돌아왔다. 이스라엘판 '논개'로 '팜므파탈'의 원조쯤 되는 영웅이다. 다분히 자극적인 그의 이야기는 그림 뿐 아니라 조각, 오페라 등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 거듭났다.

이 4명의 화가가 그린 작품들 가운데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의 표정은 유독 분노에 차 있다. 유디트와 그의 하녀, 두 여성이 한 남성을 힘으로 눌러 제압한 채 칼로 목을 베는 섬뜩한 장면에선 누군가를 향한 적개심이 느껴진다.

그렇다. 젠틸레스키는 이 4명의 화가 중 유일한 여성이다. 그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 화가였다. 이탈리아의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는 딸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어린 딸을 자신의 동료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맡겼다.

그런데 젠틸레스키는 17세 되던 해 그의 스승 타시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만다. 그것도 상습적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친구를 상습강간범으로 고발했다. 그러나 재판은 오히려 그에게 고통만을 안겼다. 성폭행 사실의 입증을 위해 진찰대에서 치욕적인 검사를 받고 모진 고문까지 당해야 했다.

이후 그는 미술학교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입학을 거부당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성폭행과 고문에 입학 거부까지. 남성 혐오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유난히 폭력적이고 잔인한 그의 작품들에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다.

이 비운의 천재에게 1610년 한 고객이 ‘유디트’에 대한 그림을 주문했다. 그는 주문에 응하며 이런 편지를 써 보낸다.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 당신은 시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유디트'란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남성혐오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에 올라온 한 게시물을 보고 떠오른 단상이다. 버스에서 남성들의 목을 향해 흉기를 들이댄 사진이다. 작성자는 "짜증나서 실수로 한남(한국 남성)을 찌르기도 한다. (중략) 여름에 교통수단 이용하지 마라. 확 찔러버린다"고 적었다.

"죽이고 묻은 아버지 시체 다시 파봤다"며 하반신을 드러낸 남성 시신의 사진을 올리고, 아동 살해를 예고하는 워마드의 행태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남성 중심적이란 이유로 가톨릭이 신성시하는 성체를 불 태우기도 했다. 그동안 여성으로 살아오며 어떤 고통을 겪었기에 그들은 이런 극단으로 치달았을까?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직장과 가정에서 성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도 엄존한다. 워마드의 대척점에 선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가 대표적이다. 없어져야 할 집단이다. 자신들의 행동은 남성들이 여성과 입장을 바꿔보게 만드는 '미러링'(mirroring)일 뿐이라는 워마드의 논리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렇다고 워마드의 이런 패륜적 행태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일부 회원은 자신들의 목표가 '여권신장'이나 '양성평등'이 아니라고 한다. 남성혐오는 단지 '놀이'나 '스포츠'일 뿐이라고 한다. '남성 말살'이 목표라는 회원도 있다. '남혐'과 '여혐'의 악순환으로 득을 보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워마드가 페미니즘에 대한 공감마저 걷어낼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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