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형량은 솜방망이"…도대체 왜?

[재판의 법칙-성범죄 양형] "살인해도 유기징역은 30년이 최고, 상한선 높여야"…아동 성범죄 형량 크게 높아져

한정수 기자 2018.07.22 18:08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1. 2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7월 부산의 한 모텔에서 술에 취한 채 잠을 자고 있는 여성을 성폭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술에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핑계를 댄 셈인데, 법원은 그럼에도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관대한 형을 선고했다. 통상 성범죄자에게 함께 부과되는 신상정보공개 및 고지 명령도 하지 않았다.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2. 70대 남성 B씨는 아들이 숨진 뒤 1년9개월 동안 며느리를 약 20회 성추행 및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범행으로 며느리가 임신을 하게 되자 낙태까지 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B씨는 지난 5월 2심에서 징역 5년으로 감형을 받았다. 피해자와 합의를 한 것은 아니지만 5000만원을 공탁한 것이 형량을 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범죄자들에 대한 법원의 처벌이 '솜방망이'이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비교적 가벼운 형량이 선고된 성범죄 사건에 대한 온라인 기사 댓글에는 법원을 비판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대다수 법관들은 성범죄 형량이 결코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형량이 너무 높아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고 토로한다. 이런 생각의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 "성범죄 형량은 양형기준대로"

형사재판을 하는 법관은 피고인에게 형량을 정할 때 양형기준을 참고한다. 양형기준은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없지만 법관이 양형기준을 이탈하는 경우 판결문에 양형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따라서 합리적 이유 없이 이 기준을 위반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개별 범죄별로 범죄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별도의 기준을 만들고 있다. 현재 성범죄를 포함해 살인, 뇌물, 횡령·배임 등 20개 주요 범죄의 양형기준이 정립돼 있다. 

대표적인 성범죄인 일반적인 성폭행의 기본 형량은 형법상 3년 이상의 징역이다. 그러나 양형기준은 더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두고 있다. 기본은 2년6개월∼5년, 감경 사유가 있을 때는 1년6개월∼3년, 가중 사유가 있을 때는 4년∼7년이다. 양형기준상 피고인이 자수를 했거나 진지한 반성을 하는 경우, 상당한 금액을 공탁했거나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등의 때는 감경 사유가 있다고 판단한다. 반면 누범이거나 상습범일 때, 계획적으로 범행을 했거나 피해자와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때는 형량이 가중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며 "이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양형인자를 따질 때 감경요소보다는 가중요소가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정해져 있다"며 "성범죄의 형량이 낮다는 인식은 사안을 정확히 모르는 데서 오는 오해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에서 살인이나 강도 등 다른 강력범죄와 비교할 때 성범죄의 형량은 결코 낮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유기징역 상한선 30년, 성범죄 형량만 높이기 어려워"

판사들이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을 양형기준대로 정하는데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불만이 나오는 것은 정해진 양형기준 자체가 낮아서다. 살인 등 가장 무거운 죄의 최고형량을 높여야 성범죄에 대한 형량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현재 30년으로 정해진 유기징역의 상한선을 높이고 이와 함께 성범죄 형량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형법이 정한 유기징역의 상한선은 30년이다. 가중처벌이 될 경우 최대 징역 50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사실상 무기징역과 다름없는 셈이다. 주로 살인죄와 같은 강력범죄의 경우 30년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성범죄는 살인 등 기타 강력범죄보다 더 중한 범죄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에 징역형의 상한선이 30년으로 정해져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성범죄 형량만을 높이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전반적인 범죄의 형량을 모두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판사들과 일반인들의 시각에도 차이가 있다. 성범죄 변호 경력이 많은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양형기준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건을 대하는 판사들과 피해자들의 인식이 다른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대중들은 대체로 피해자 쪽에 감정을 이입해 사건을 바라보는데 법원은 법률적인 부분과 양형기준 등을 토대로 사건을 다루다보니 생각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피해자와 진정한 합의가 이뤄졌을 경우에 일부 감형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공탁금을 냈다는 사정만으로 감형을 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공탁 문제 등을 포함한 양형기준을 보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아동 성범죄 형량 크게 높아져

그러나 성범죄 형량의 하한을 무턱대고 높이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각 성범죄의 사안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하한을 높이기만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며 "오히려 양형기준상 권고형의 범위를 더 넓게 잡아 경우에 따라 형량을 더 세게 선고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방향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성범죄 형량의 하한이 너무 높게 설정돼 있을 경우 혐의 소명 정도를 더 꼼꼼히 따져 유무죄를 판단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무죄 선고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범죄 형량과 관련한 대중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성범죄 형량을 두고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성범죄 형량을 정하는 것은 구체적인 범행 경위 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해 판사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범죄 피고인은 징역형 등 처단형 뿐 아니라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 명령과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 등이 함께 부과되기 때문에 처단형이 낮다고 해서 더 편한 것이 아니다"라며 "또 성범죄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등의 사정 등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중들이 체감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성범죄 형량은 과거에 비해 높아지는 추세다. 양형위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2016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이 피해자인 상해를 수반한 성범죄의 경우 2013년 평균형량이 51개월(4년3개월)에서 2016년 144개월(12년)로 크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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