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6일…그날 이후 세상은 바뀌었을까

[서초동살롱]

박보희 기자 2018.07.23 05:00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및 유가족들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국가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 해운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에서 승소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이상현 부장판사)는 이날 전명선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유족들이 국가와 청해진 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희생자 1명당 위자료 2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친부모들에겐 각 4천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2018.7.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돈 받고 끝내라? 그럴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 소송을 시작합니다. 소송을 통해서라도 원인을 밝히고 정부의 위법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판결문에 명시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이후 반복되는 어이없는 참사를 막고 안전 사회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법원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2015년 9월23일,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발표문 중)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4년 3개월, 이들이 소송을 시작한지 2년 10개월만에 법원이 답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0부(부장판사 이상현)은 지난 19일 희생자 119명, 이들의 가족 336명이 제기한 손배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피고 대한민국'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을 내린 겁니다.

법원이 유가족들이 주장한 모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해경의 초기 구조 실패에 대해서만 국가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사고 발생 직후 현장에 출동한 해경 123정의 정장 김모씨가 4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운 세월호가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해가고 있는데도 신속하게 퇴선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봤는데요. 앞서 김씨는 지난 2015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3년이 확정된 바 있습니다.

법원은 "123정 정장은 승객들의 퇴선유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도 이를 실시하지 않는 등 국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 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이 사건 희생자들은 구체적인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선내에서 구조세력을 기다리다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은 국가는 공무원 등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을 구하는 것은 공무원인 해경의 업무이자 의무입니다. 법원은 구조를 했어야 할 해경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아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법원 판단에 대해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와 비교하며 이를 왜 국가가 배상해야 하느냐는 냉소적인 비난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법원의 판단은 사고 자체에 대한 배상이 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호 의무를 가진 국가가 구조 업무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것인데요. 예를들어 교통사고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지는 않더라도, 교통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가 사고로 크게 다친 승객을 그대로 두면 생명이 위태로울 것을 알면서 바라만 봤다거나, 적법한 매뉴얼대로 구조 활동을 하지 않는 등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뜻인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진도 VTS의 관제 실패 △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 지휘 △현장구조세력의 구조 실패 △국가재난 컨트롤타워 미작동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왜 이렇게 판단했을까요?

법원은 '진도 VTS가 세월호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해 초동 대응을 지연시켰고, 세월호의 위급한 상황을 파악하고서도 이를 구조대에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유가족 측의 주장에 대해 "이들이 나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점, 당시 세월호는 갑작스럽게 복원력을 잃어 전복된 매우 이례적인 경우인 점, 세월호와 교신하면서 퇴선조치를 요구했던 점 등에 비춰 이들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조본부가 현장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초기 구조작업의 부실을 초래했고, 목포해양경찰서장의 사전 구호 조치가 소극적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구조본부가 현장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목포해경 서장이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 소극적인 지휘를 한 원인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원칙없는 조직개편 과정에서 국가의 재난대응 컨트롤타워는 기능을 상실했고 이로 인해 세월호 사고가 대참사로 이어졌다'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정부 조직 개편 자체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고, 정부 조직의 개편이 곧바로 국가의 재난 대처 기능 상실 및 세월호 사고 발생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이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2014년 4월16일 삶의 시간이 멈춰버린 세월호 유가족들은 "기쁘지 않다"고 말합니다. 유경근 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법원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참사 당시 얼마나 무능 아니 무능을 넘어 아예 구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고,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했고, 정보기관이 피해자들을 사찰했고, 피해자들 등급을 매겼고, 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로 해산시켜서 위법하다는 판단 받았고, 더구나 과적과 조타미숙과 그로인한 복원력 상실이 침몰 원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구조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구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청해진 해운이 항소를 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판단 하에 2심 재판에서는 추가적으로 드러나는 사실, 의혹을 넘어 사실로 드러나는 것 모두 다시 한 번 재판에 반영돼 그냥 정부 잘못, 청해진 잘못이 아니라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지금보다 더 큰 책임을 묻는 2심 재판이 되길 기대합니다."

유가족들이 법원에 요구하는 것은 정부의 관리 책임이 무엇인지, 정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조목조목 밝혀달라는 겁니다. 이들은 이것이 명확히 밝혀져야 또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참사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은 바뀌었을까요?

지난 17일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2호기가 추락해 5명의 군인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군은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데요.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며 장례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부는 장례를 치르자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4년여 전 세월호 유가족들이 했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얼마 전 태국에서는 동굴에 갇힌 유소년 축구팀 선수 12명과 코치 1명이 17일만에 기적처럼 구조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유 위원장은 '태국 동굴 소년이 구조되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녀들의 생사를 애타게 기다리며 마음 졸였을 부모들을 생각하며 같은 엄마 아빠 입장에서 너무나 기뻤다"면서 "동시에 태국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태국 사람들이 부러운 것이 처음이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고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국가의 역할과 의무의 영역입니다. 참사의 규모는 달라도 가족을 잃은 슬픔의 크기가 다를 수 없습니다. 이번 법원의 판결을 시작으로, 또 앞으로 남은 재판 과정을 통해 더 이상은 같은 이유로 눈물 흘리는 이들이 없기를, 우리 국민들이 다른 나라 국민을 부러워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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