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적폐 청산' 신호탄…KTX 해고 승무원들 12년만에 복직

대법원 판결, '재판거래' 결과물 인식…다른 '재판거래' 의혹 사건 피해자 구제 주목

이상배 기자, 신희은 기자 2018.07.22 15:36

21일 서울역에서 열린 KTX 해고 승무원들이 투쟁 해단식 기자회견에서 한 해고 승무원이 발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국철도노동조합과 한국철도공사는 철도공사에서 정리해고된 KTX 해고 승무원들을 경력직 특별채용 형식으로 2019년까지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철도노조와 철도공사는 지난 9일 첫 만남을 시작으로 총 5차례 교섭을 벌였고, 이날 오전 4시쯤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이로써 KTX 해고 여승무원 180여명은 12년 만에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사진=뉴스1

'사법적폐' 청산의 신호탄이 올랐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의 판결로 일자리를 잃은 KTX 해고 승무원 180여명 전원에 대해 12년만에 복직이 결정되면서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박근혜정권과 사법부의 유착에 따른 '재판거래'의 결과물이란 인식이 깔렸다.

논란도 없지 않다. 사법부의 판결이 정권교체와 함께 극복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다. 사회의 갈등을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최종심급' 대법원의 위상 추락과 사법부의 신뢰 훼손이 불가피하다.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재판거래 의혹에 휩싸인 다른 20여개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자 구제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이 경우 사실상 문재인정부 적폐청산의 결정판이 될 전망이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전국철도노조는 과거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던 KTX 승무원 180여명을 내년 상반기까지 상무영업(역무) 분야 6급으로 특별채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사합의서 3개항과 부속합의서 7개항에 21일 전격 합의했다. 지난 2월 문재인정부에 의해 임명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지난달 해고 승무원들과 면담하고 해고자 복직을 위한 교섭을 시작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오 사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소속 재선 의원 출신이다.

현재 자회사 업무인 KTX 승무업무가 코레일 직접업무로 전환되면 이번에 채용된 승무원들도 현업에 복귀하게 된다. 철도노조는 해고 승무원 채용이 완료된 이후에도 코레일이 KTX 승무업무를 직접고용 업무로 전환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KTX 해고 승무원들은 2004년 1월 철도청(현 코레일)의 공개모집에 합격,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입사했다. 이들은 승객안내 업무를 위탁받은 '홍익회'에 소속됐다가 2005년 1월 코레일의 자회사인 한국철도유통으로 고용이 승계됐다. 그러나 같은해 11월 이 회사가 노무관리 등의 어려움을 이유로 계약을 반납하자 코레일은 이들에게 KTX 관광레저로 이적해 계약할 것으로 요구했다.

승무원들은 코레일이 입사 후 2년이 지났는데도 정규직 전환 약속이 지키지 않고 또 다른 자회사의 계약직으로 재계약을 강요하자 서울지역본부 점거농성 등 투쟁에 들어갔다. 코레일은 2006년 5월 자회사로 이적을 거부한 승무원 280여명을 정리해고했고, 이에 해고 승무원들은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으로 맞섰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이들이 코레일에 직접 고용됐느냐, 아니면 정당한 도급계약에 따라 위탁 고용됐느냐였다. 2010∼2011년 1·2심 법원은 "코레일의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된다"며 해고 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015년 2월 양승태 대법원은 "코레일과 승무원 간의 직접 근로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결국 재판은 같은 해 11월 서울고법이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해고 승무원의 패소로 끝났다.

이 KTX 해고 승무원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협상 추진 전략'에 등장한다. 2015년 11월19일 작성된 이 문건에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다"는 문구와 함께 KTX 해고 승무원 등 20여개 사건이 사례로 적시돼 있다. 당시는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국회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치던 때다. KTX 해고 승무원이 대법원 '재판거래'의 희생양으로 지목된 이유다.

이 문건에는 이밖에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통상임금 △쌍용자동차 노조 △강정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박근혜정부 당시 주요 공안 사건 등이 다수 기재돼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설령 재판거래가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이는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재판을 다시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재판을 통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할 수는 있지만, 모든 대법원 판결을 재판거래의 산물로 매도하는 게 옳은지는 생각해볼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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