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악 시나리오' 따라가는 대법원

황국상 기자 2018.08.02 04:00
“물적 조사를 거부한다 → 심각한 갈등이 지속되다가 외부 기관에 의해 자료가 강제로 공개된다 → 관련자 다수가 징계를 받고 대법원장의 리더십이 상실된다.”

지난해 4월 27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진 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보고서에 담긴 시나리오들 가운데 최악의 경우다.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의혹을 담은 400여건의 문건이 공개되고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사법부의 모습을 그들 스스로 예견했던 걸까.

이 보고서가 작성된 시점은 대법원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행정처 PC 등에 대한 물적조사도 실시하지 않은 채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근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직후였다. 당시 행정처는 최선의 시나리오로 ‘혐의 PC에 대한 자료 복원 및 추가 물적조사 실시 → 문제가 될 자료의 미발견 → 진정국면’의 수순을 꼽았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문제가 될 자료가 나왔고, 결국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행정처는 물적조사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 “법관 사회의 불신, 대법원장·법원행정처 리더십 상실,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 저하 등 무형자산의 상실도 경시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은 10%선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이 실현 확률이 10%선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은 대법원이 자초한 결과다. 어설픈 1·2차 내부 조사가 여기까지 판을 키웠다. 문제는 대법원의 그런 행태가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원은 검찰의 자료 제출 요청을 거부하고, 사법농단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관련자들의 압수수색 영장까지 잇따라 기각했다. 이 때문에 여론이 악화되고 나서야 그간 공개하지 않던 사법농단 의혹 문건들을 내놓고 이 때문에 또 다시 신뢰가 추락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법원을 못 믿겠으니 사법농단 사건 재판을 특별재판부에 맡기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신뢰는 여미고 닫는다고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비등점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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