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닮는다?…양승태 대법원의 데자뷰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부산 법조비리' 숨기려 문건 작성한 前대법원…그 문건 숨기는 現대법원

이상배 기자 2018.08.09 05:00

기원전 17세기, 중국 하나라의 걸왕은 원래 지혜와 용기를 함께 갖춘 성군이었다. 그런데 유시씨(有施氏)의 나라에서 공물로 온 매희(妹嬉)라는 여인을 만나면서 타락하기 시작했다. 말희(末喜) 또는 말희(妺嬉)로도 불린 이 여인은 빼어난 미색으로 걸왕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걸왕은 그녀의 말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매희는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착취해 고기와 포를 산더미처럼 쌓고 연못에 술을 가득 담았다. 그리곤 수천명을 불러 술과 고기, 포를 함께 즐겼다. 이른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원조다. 걸왕이 매희와 함께 향락에 빠져있는 동안 백성은 피폐해졌고 국력은 기울었다. 결국 걸왕은 '은나라'로도 불리는 상나라 탕왕의 공격을 받고 남쪽으로 도망쳤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역성혁명'으로 하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상나라 역시 역설적이게도 하나라와 같은 전철을 밟는다. 기원전 11세기 상나라 주왕도 처음엔 지용을 겸비한 훌륭한 군주였다. 그러나 유소씨(有蘇氏)의 나라를 정복한 뒤 공물로 온 '달기'라는 미인을 만난 뒤부턴 여색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주지육림에 빠진 임금을 보다못한 신하들이 국정을 돌보라고 직언했다. 그러나 주왕은 듣지 않고 오히려 그 신하들을 감옥에 가뒀다. 훗날 주나라 문왕이 되는 서백도 그런 신하 중 한명이었다. 시경에 따르면 서백은 주왕에게 "은나라가 거울로 삼을 것은 먼 데 있지 않고, 하나라 때에 있다"(은감불원재하후지세·殷鑑不遠在夏后之世)고 간언했다. 그럼에도 유흥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은 주왕은 결국 주나라 무왕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왕조의 흥망성쇠엔 규칙이 있다고도 한다. 권력의 본질이 그런 걸까. 거울로 삼을 일은 멀리 있지 않다는 뜻의 '은감불원'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대법원이 특히 그렇다. 판사는 임용되는 순간부터 '공인'이다. 만인의 생사여탈권을 쥔 권력자다. 그런 법관이 범죄자로부터 향응을 받았다면 그게 숨겨서 될 일일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은 그런 제 식구의 허물을 덮으려 애를 썼다.

2015년 부산의 건설업자 정모씨가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5000만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입건됐다. 정씨를 수사하던 검찰은 당시 부산고법의 문모 판사가 정씨에게서 4~5년간 10여차례 골프와 유흥주점 접대 등 향응을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법원에 이를 알렸지만 법원은 문 판사에게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그는 올 1월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징계를 받았다면 변호사 등록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2016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정씨의 항소심 변론이 끝나자 법원행정처는 '문모 판사 관련 리스크 검토'란 문건을 작성했다.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되면 검찰이 문 판사의 비위 사실을 외부로 유출할 우려가 있으니 종결된 변론을 재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항소심 재판은 문건대로 흘러갔다. 종결됐던 변론이 갑자기 재개됐다. 정씨는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법정구속은 피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무리 법원행정처라도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개입할 수 없다. 만약 항소심이 문건이 실행된 결과라면 법원이 조직의 치부를 숨기려고 스스로 헌법을 어긴 셈이다. 검찰은 이 사안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부는 다를까?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올초 이 문건을 확인하고도 그냥 덮었다. 고발도 감사도 없었다. 형사소송법상 공무원의 '고발 의무' 위반이다. 법원은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된 300여개 문건을 공개하면서도 이 문건만큼은 내놓지 않았다. 대법원은 과거의 전철을 밟으려는 걸까? 거울로 삼을 일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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