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통행세'는 배임죄일까?

12년차 공정거래전문 변호사가 말해주는 '공정거래로(law)' 이야기

백광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2018.08.13 09:01
그래픽=이지혜 기자

# A그룹 계열사 B사는 CD기 위주에서 ATM기 위주로의 사업모델 변경·확대 계획을 A그룹 최고 경영진에게 보고했다. 보고 당시 B사는 ATM기 제조사로 C사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고 했으나, 보고 중에 A그룹 최고 경영진은 A그룹 다른 계열사인 D사를 거래 중간에 끼워 넣을 것을 지시했다. ATM 사업경험이 전혀 없었던 D사를 거래중간에 끼워 넣게 한 것은 재무상황이 어려운 D사에 수익을 창출해 주기 위해서였다. 결국, B사는 기존의 직거래방식과는 달리, ATM기를 제조사인 C사로부터 직접 구매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열회사인 D사를 통하여 구매하였고, D사는 이 거래를 통해 약 40억 원의 매출차익을 실현했다.

공정위는 B사가 제조사로부터 ATM기를 직접 구매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열회사인 D사를 통하여 간접 구매하는 방법으로 부당지원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다. 서울고법과 대법원 역시 제조사인 C사로부터 직접 구매하지 않고 같은 계열사인 D사를 거쳐 구매함으로써 D사로 하여금 매출이익을 실현하게 한 것은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의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하고 이에 대한 공정위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 부당지원행위 성립하려면 지원행위는 물론 부당성까지 필요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 나목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6조 제1항 관련 [별표1의2]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 제10호 라목을 종합하면, ‘부당한 지원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원주체가 다른 사업자와 직접 상품·용역을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거래상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매개로 거래하여야 한다(지원행위). 구체적으로는 △ 다른 사업자와 직접 상품·용역을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거래상 역할이 없거나 미미한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거래단계에 추가하거나 거쳐서 하는 행위, △ 다른 사업자와 직접 상품·용역을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거래단계에 추가하거나 거쳐서 거래하면서 그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에 거래상 역할에 비하여 과도한 대가를 지급하는 행위이다.

다음으로, 지원주체의 지원행위로 말미암아 지원객체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속한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어야 한다(부당성). 이 때 부당성 유무는 오로지 공정한 거래질서라는 관점에서 평가되며, 공익적 목적·소비자 이익·사업경영상 또는 거래상의 필요성 내지 합리성 등도 공정한 거래질서와는 관계없는 것이 아닌 이상 부당성을 갖는지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고려되어야 하는 요인의 하나라고 할 것이나, 단순한 사업경영상의 필요 또는 거래상의 합리성 내지 필요성만으로는 부당지원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부당성 및 공정거래저해성이 부정되지 않는다.

◇ 역할 없는 계열회사 끼우는 방식으로 거래…정상적 경영 판단 결과로 볼 수 없어

이러한 부당지원행위 성립요건에 따라 위 사례를 보면, 우선 공정위는 B사의 간접구매 방식이 당해 업계의 통상적인 거래관행과 완전히 배치된다고 보았다. 통상적인 거래관행은 수요업체가 제조사로부터 ATM기를 직접 구매하여 불필요한 유통비용을 절감하는 것이고, ATM기는 설치 후에 유지보수가 필수적인데 유지보수는 중간 유통업자가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별도의 유지보수 업체도 없어 통상 제조사가 유지보수를 직접 수행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B사는 본 건 이외에는 모두 제조사로부터 직접 금융자동화기기를 구매해 오기도 했다.

다음으로 공정위는 이러한 중간거래를 통해 어떠한 경제적 효율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결국 D사는 아무런 실질적 역할 없이 형식적 역할만을 수행하면서 중간마진을 챙겼을 뿐이며 이러한 중간마진만큼 B사는 손해를 보았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공정위는 본 건 지원으로 D사의 재무구조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는 등 현저히 개선되었다고 보았다. B사가 D사에 본 건으로 지원해 준 금액은 D사의 3년간 당기순이익의 약 85%에 이르는 규모였다.

서울고법 역시 △ D사는 가스보일러 및 자동판매기 제조·판매업 등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서 ATM기 등 금융자동화기기 제조 경험이 전혀 없었던 점, △ B사가 ATM기를 제조사인 C사로부터 직접 구매하지 않고 이와 무관한 D사를 통해 구매하기로 한 것은 관련 업계의 보편적인 거래 관행과 과거 구매형태에 부합하지 않아 매우 이례적인 점, △ D사를 거쳐 ATM기를 구입하기로 결정할 무렵 D사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던 점, △ ATM기 개발과 관련한 D사의 역할이 미미했던 점 등을 근거로 정상적인 경영판단의 결과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와 형법상 배임은 별도…합리적 경영판단 범위 내라면 배임 고의 인정 어려워

본 사례는 대기업집단이 별다른 역할 없는 계열회사를 중간에 끼워 넣어 일종의 ‘통행세’를 챙기게 해 주는 방식으로 부당지원한 행위를 적발하여 공정위가 제재한 첫 사례이다. 즉 단순한 거래단계만 추가하여 계열회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부당내부거래에 제동을 건 것으로, 당시에는 지원주체인 B사만 제재를 받았지만 이후 법 개정으로 지원객체도 제재를 받게 되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처럼 지원행위를 한 경우 통상적으로 지원주체가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형법상 배임죄 여부가 문제된다. 실제로 위 사례에서도 A그룹 경영진에 대한 배임죄 여부가 문제되었으나 법원은 결과적으로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로 평가될 수 있거나 해당 법령에 의한 제재가 필요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배임죄 성립여부는 별도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면서, ATM사업에 D사를 참여시킨 것을 B사에 대한 배임행위로 보기 어렵고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입증되지도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즉 계열회사에 대한 지원행위가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면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이다.

참고로, 지원행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배임죄에 성립하는지 여부는 △ 지원을 주고받는 계열회사들이 자본·영업 등 실체적인 측면에서 결합하여 공동이익과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는 관계에 있는지 여부 △ 해당 지원행위가 기업집단에 속한 계열회사들의 공동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서 특정인 또는 특정 회사만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여부 △ 지원 계열회사의 선정 및 지원 규모 등이 당해 계열회사의 의사나 지원 능력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된 것인지 여부 △ 구체적인 지원행위가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시행된 것인지 여부 △ 지원을 하는 계열회사에 지원행위로 인한 부담이나 위험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객관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 여부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법무법인(유한) 바른의 공정거래팀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백광현 변호사(연수원 36기)는 공정거래분야 전문가로 기업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공정거래 관련 이슈들을 상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공정거래위원회 정보공개심의회 위원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공정거래법 실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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