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주의 PPL] 김앤장, '조국'과 '고객'의 딜레마

국내 최대 '토종' 로펌 김앤장, 강제징용 재판서 日전범기업 대리인 도맡아…김앤장이 대일본 공익소송 나선다면?

유동주 기자 2018.08.15 11:24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재판거래 논란'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강제동원피해 사건 판결의 정치적 거래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2018.5.31/사진=뉴스1

광복 73주년을 맞았지만 '진정한 광복'은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만행에 대해 일본은 지금까지 '진정한 사과'를 내놓지 않았다. 피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엔 박근혜정부 청와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재판을 놓고 2013년말 대법원과 흥정을 시도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판사들의 해외공관 파견을 늘리는 대가로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돌리고 확정 판결을 늦춰줄 것을 요청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신일철주금, 후지코시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당초 하급심은 전범기업들의 배상 책임이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2년 5월 원심을 뒤집고 이들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일본 전범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도록 하는 고법 판결이 나오자 전범기업들이 이에 불복해 2013년 8월 재상고하면서 대법원에 다시 사건이 올라갔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대법원은 5년째 재판을 끌어오며 현재까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소송을 낸 강제징용 피해자 9명 가운데 7명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사건에 국내 최대 '토종' 로펌인 '김앤장'의 이름이 등장한다. 김앤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상대편인 일본 전범기업들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 신일철주금, 후지코시 등이 김앤장의 고객이다.

현재 계류 중인 16건의 강제징용 사건들에서 일본 기업들을 대리한 대형 로펌은 김앤장이 유일하다. 일부 소형 로펌들이 일본기업들을 대리하고 있지만 김앤장을 제외하곤 이른바 대형 로펌은 찾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강제징용 사건은 커다란 역사적 의미와는 달리 소송 규모 자체가 크지 않다. 강제징용 사건은 손해배상 청구액이 피해자 1인당 1억원 정도로, 전체 소가(訴價)는 참여인원에 따라 수억원 정도에 그치는 작은 소송이다. 이에 따라 로펌이 받아갈 수임료도 크지 않다. 김앤장을 제외한 다른 대형 로펌들이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일본 전범기업의 대리를 맡지 않는 이유다.

주요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기업측(원고) 대리인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 명단엔 '김앤장' 표시가 없다. /사진= 대법원 전자소송 사이트 캡쳐


◇'법무법인' 아닌 '법률사무소' 김앤장

그렇다면 대형 로펌들 가운데 왜 유독 김앤장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맞서 일본 전범기업들을 대리하는 걸까? 여기엔 김앤장이란 조직의 특수성이 한몫한다.

알려진대로 김앤장은 '법무법인'이 아닌 '법률사무소'다. 공식적으로 법인이 아니라 개별 변호사가 각 사건을 책임지고 맡는 구조다. 법무법인이란 단일한 조직 형태를 취하는 다른 대다수 대형로펌들과 대조된다. 

이 때문에 김앤장은 어떤 사건을 맡아도 로펌의 이름이 좀처럼 노출되지 않는다. 강제징용 사건을 대법원 전자소송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사건정보에 피고(일본기업)측 대리인이 '변호사 OOO'로 나와 있다. 법률사무소 김앤장 소속이란 내용은 빠져있다. 

모르고 보면 일본기업이 '개인' 변호사를 선임한 걸로 오해할 수 있다. 해당 변호사의 소속을 찾아보지 않는 한 그들이 김앤장 소속이란 사실을 알 수 없다. 원고(피해자)측 대리인의 경우 '법무법인 해마루(담당변호사: OOO)' 등처럼 법인명과 담당 변호사가 함께 소개된 것과 상반된다.

김앤장의 법률사무소 형태는 1973년 김영무·장수길 변호사가 사무실을 연 이후 줄곧 고수한 방식이다. 관련 변호사법령에 따라 장단점이 혼재하지만, 김앤장은 이런 형태를 유지하며 여러 이점을 누리고 있다. 예컨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맡으면서도 '김앤장'이란 이름이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도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법률사무소 형태에서 오는 부수적인 효과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홈페이지

◇김앤장이 대일본 공익소송 나선다면?

비단 강제징용 사건만이 아니다. 그동안 사회적 지탄을 받는 외국계 기업들을 가장 많이 대리한 곳이 김앤장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옥시, '연비조작' 파문의 폭스바겐, '먹튀' 논란을 빚은 론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엔 옥시, 폭스바겐 사건 등 초대형 사건들을 맡은 결과로 김앤장의 연매출액이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앤장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한국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계 기업들이 법률대리인을 구할 때 '국내 1위' 김앤장을 가장 먼저 찾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김앤장 입장에서도 찾아오는 의뢰인을 내칠 수는 없다. "김앤장이 안 해도 어차피 다른 로펌이 한다"는 것도 김앤장의 주된 항변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건 '한국 대표 로펌 김앤장' '국내 1위 토종 로펌 김앤장'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의식이다. 김앤장이 제1원칙으로 삼는 '고객중심주의'는 대한민국의 '국익'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일까?

오래 전이지만 인권 변호사의 표상으로 존경받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한때 김앤장에 몸 담았던 시절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법연수원 수료 직후 조 변호사의 권유로 김앤장의 구성원이 될 뻔 했다. 조 변호사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김앤장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

전범기업을 대리하고 있는 김앤장이지만 아직 '한국 대표 로펌'으로서의 명예를 지킬 기회는 남아있다. 김앤장에는 '나눔과 동행'을 모토로 삼는 '사회공헌위원회'가 있다. '공익소송' 등의 공익사업을 하는 곳이다.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가 위안부 또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대일본 사건에 대해 공익소송에 적극 나서면 어떨까?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로펌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물론 김앤장 변호사들이 이미 맡고 있는 강제징용 사건들은 피해야 할 터다. 

만약 일부 일본 전범기업 고객들의 눈치 때문에 그런 걸 할 수 없다면 과연 김앤장을 '대한민국 대표 로펌'이란 이름으로 계속 부를 수 있을까?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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