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말했는데 징역?"…'명예훼손죄' 형량 낮아지나

[the L 리포트] 대법원 양형위, 9월10일 명예훼손죄 양형기준 마련 착수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8.19 05: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대법원이 명예훼손죄에 대한 양형기준 마련에 본격 착수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9월부터 명예훼손죄 양형기준을 만들어 내년 상반기 중 시행할 방침이다.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라는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이에 대해 벌금형 위주로 낮은 양형기준이 설정될지 주목된다. 양형기준이란 법정형 내에서 판사가 선고할 형량의 범위를 미리 정해둔 것을 말한다. 

대법원 양형위 관계자는 19일 머니투데이 '더엘'(the L)에 "9월10일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명예훼손 범죄의 양형기준 마련에 착수해 내년 1월쯤 공청회를 거쳐 상반기 안에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양형위는 지난해 6월 명예훼손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키로 결정한 바 있다. 명예훼손과 사자 명예훼손,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등이 대상이다.

양형위는 지난해 12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사건을 기준으로 약 90.7%의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 마련을 마쳤다. 거의 대부분의 범죄에 이미 양형기준이 설정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명예훼손죄의 경우 그동안 주로 징역형 대신 벌금형이 선고돼 왔다는 점에서 다른 중범죄들에 비해 양형기준 마련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다. 현재 설정된 38개의 범죄군의 양형기준 가운데 벌금형이 포함된 것은 선거범죄 뿐이다.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의 경우 직이 상실되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규정했지만 이밖에는 대부분 징역형 위주다. 

명예훼손 관련 형법 조항./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쳐

명예훼손죄 양형기준 마련 과정에서 최대쟁점 가운데 하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될 전망이다.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아예 비(非)범죄화, 즉 폐지하고 민사소송으로 해결토록 하자는 요구가 높아서다.


지난 4월5일엔 법학 교수, 변호사 등 법률가 330인이 함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유엔에서도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현행 형법 307조는 사실을 적시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경우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 가운데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외엔 찾기 어렵다. 미국도 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처벌하지 않는다. 영국은 2010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했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라며 “명예훼손으로 책임 질 일이 있으면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면 되고 처벌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사진=뉴스1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 Too) 폭로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미투 운동에 동참했던 피해자들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게 한가지 이유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될 경우 가해자 또는 제3자가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퍼뜨려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형법 조항은 그대로 두고 ‘위법성 조각사유’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공익을 위한 경우 등에 한해 위법성이 없다고 보고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미 현행 형법 310조도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거나 폭넓게 인정하자는 얘기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대상이 ‘공인’인 경우에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보는 등의 대안이다.

양형위 관계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경우 비범죄화 요구도 있는 만큼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라며 “위원들이 여러 논의를 거쳐 세부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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