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실적강요로 인한 스트레스에 극단적 선택... 업무상 재해"

황국상 기자 2018.08.19 09:00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근로자가 실적 강요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유진현)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不)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자살로 사망한 경우 업무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겹쳐서 질병이 유발·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해 정상적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을때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A씨의 남편 B씨는 2000년 12월 C음료의 한 지점에 입사해 음료 영업을 해왔다. 하루 평균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11시간여를 근무해 왔던 B씨는 2014년 5월 하순경 회사에 출근한다고 집을 나갔으나 실제로는 출근하지 않았다. 그는 며칠 후인 6월초 한 공터에서 승용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B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이에 공단은 "회사의 영업형태로 인해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으나 관행적으로 행해져 B씨가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보인다"며 "정신적 혼란을 유발할 정도의 업무상 만성적 스트레스나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가 확인되지 않고 오히려 개인 판단에 의한 금전적 손실이나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 등으로 경제적 압박이 심해지며 자살하게 된 것"이라고 A씨의 청구를 거절했다.

이에 A씨는 "회사 측이 남편 B씨에게 과도한 실적을 부여하고 미수금을 변제하도록 강요했다"며 "이에 B씨가 생계 유지를 위해 회사의 부당한 지시를 이행할 수밖에 없어 채무를 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B씨가 당한 보이스피싱 사기는 정상적 상황이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보이스피싱 사기는) 당시 월말 거래대금 회수에 따른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로 거래대금 결제 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행위이기 때문에 업무관련성이 높다"고도 했다.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B씨가 일한 지점은 과거 1년치 평균 등을 고려해 영업사원별로 월별 목표치를 설정했고 목표치를 100% 달성하면 판매수당 전액과 인센티브를 지급받은 반면 미달성시 판매수당 일부를 지급받지 못했다"며 "월 목표치 달성률이 다른 지점이나 영업사원에 비해 저조한 경우 지점장에게 욕설 등 비인격적 대우를 받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 지점 영업사원들은 목표치 달성률이 저조한 상황일 때 실제 판매하지 않은 물품을 서류상으로만 파냄한 것으로 기재해 회사에 보고하고 그 매매대금은 미수금으로 처리하는 이른바 '가판'(가장판매) 방법을 통해 월 목표치 달성률을 변칙적으로 끌어올렸다"며 "판매대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실제 대금이 회수되더라도 서류상 보고된 판매단가와 실제 덤핑판매된 단가의 차액을 사원이 부담해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는 가판 물품을 덤핑판매해서 발생한 서류상 판매액과의 차이 문제 등을, 다른 직원에게서 돈을 빌리거나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해결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월 목표치 달성 점검이 다가오수록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급속히 증폭돼 보이스피싱 계좌에 입금하는 등 정상적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B씨가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B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공단의 처분은 위법해서 취소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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