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온천이 펑펑"…광고도 계약일까?

[우리 삶을 바꾼 변호사] 김성진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 아파트 주민 손해배상소송서 새로운 대법원 판례 주도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8.28 11:03

법무법인 태평양 김성진 변호사/ 사진=김창현 기자


# A씨는 1998년 2월 한 아파트 분양광고를 보게 됐다. B사가 분양하는 이 아파트 광고에는 "게르마늄 성분을 포함한 온천이 365일 펑펑 쏟아진다"고 적혀 있었다. 유실수 단지와 테마공원도 들어선다고 했다. 콘도 이용권도 제공되고 서울대 캠퍼스 이전, 전철 복선화, 도로 확장 등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도 광고에 포함됐다. 아파트가 마음에 든 A씨는 B사와 분양 계약을 맺었다. 당시 A씨가 작성한 계약서에는 방이나 화장실의 수조차도 기재돼 있지 않았고 동·호수·평형·입주예정일·대금지급방법과 시기 정도만이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완공된 아파트로 이사한 A씨는 당시 아파트의 분양광고가 허위 또는 과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온천은 없었고, 유실수 단지와 테마공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파트 또는 상가 분양광고의 진실과 과장의 경계는 모호하다. 아파트 분양광고에서 본 집에는 방이 5개인데 실제 가로 가보니 2개 뿐이라면…계약서에 그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게르마늄 온천은 어떨까? 아파트 분양 광고에 담긴 문구가 계약서에 없더라도 이를 아파트 계약의 내용의 일부로 볼 수 있을까?

2007년 6월 대법원은 경기도 소재 아파트를 놓고 벌어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광고 문구도 계약의 일부라고 판시하며 새로운 판례를 만들었다. (2005다5812 판결) 이 판결을 이끌어낸 주인공이 바로 김성진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60·사법연수원 15기)다.

당시 아파트 입주자 649명은 분양광고에서 홍보한 내용과 같이 아파트를 시공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B사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소송을 낸 이들 중에는 아파트 단지에 온천이 있다는 것만 믿고 아토피성 피부염을 가진 아이 또는 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부모를 위해 이 아파트를 산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소송은 시작부터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2001년 당시 이 사건을 맡아줄 로펌은 많지 않았다. B사와 같은 큰 기업을 상대하려면 대형 로펌이 필요했다. 하지만 대형 로펌들은 주로 건설사들을 고객으로 삼고 있어 건설사를 적으로 돌리는 소송을 맡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까지의 판례로 볼 때 승소할 가능성도 적었다.

당시엔 상가의 경우 허위 과장 광고의 내용은 계약의 내용이라고 볼 수 없고, 분양받는 사람이 잘 알아보고 사야 한다고 취지의 판례들만 있었다. 아파트의 경우엔 아예 판례조차 없었다. 다만 광고 내용은 계약의 일부라고 할 수 없지만 사기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하게 허위라면 불법행위 책임을 주장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태평양 건설부동산팀장이었던 김 대표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판례와 법리를 볼 때 쉽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국민들이 전 재산을 털어서 사는 아파트에 대해 과장 또는 허위 분양광고를 내는 문제만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부 팀원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며 반대했지만, 팀원들을 다독여가며 소송을 준비했다. 그리고 2001년 12월 24일 아파트 주민들을 대리해 아파트를 분양한 B사를 상대로 소송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사실상 패소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아파트 분양 광고와 관련해 "계약서에 없어도 광고문구도 계약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선분양 후시공’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분양에 있어 동호수와 평수, 대금, 입주시기만 나와 있는 분양계약서만으로는 계약 내용을 특정할 수 없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도로 확장 등 아파트 외형이나 재질에 관계가 없는 부분은 분양계약의 내용이라 볼 수 없지만 온천, 바닥재, 유실수, 테마공원 등은 부대시설에 해당하며 이행 가능하다는 이유로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도 계약의 내용이 된다고 판단했다. 광고 내용대로 아파트가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 분양 회사가 계약상 의무를 불이행한 것에 해당해 계약상 채무불이행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사건은 결국 서울고법에서 조정으로 확정됐다. 총 손해배상액은 약 19억원으로 분양대금에 약 2%에 해당하는 금액이 인정됐다. B사는 입주민들을 위해 아파트 단지에 온천 사우나를 하나 세워줬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분양광고에 나온 아파트의 외형, 재질이나 부대 시설 등 세부적인 조건 내용은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아도 계약의 내용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판결로 '일단 분양하고 보자'는 식의 허위·과장 아파트 분양광고가 줄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입주민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 대표변호사는 "돌이켜보면 감개가 무량하다"며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국민 대부분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재화이지만 한국의 아파트 건설 산업에는 비정상적인 요소가 많아 하루빨리 개선이 돼야 한다는 게 평소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사건 의뢰가 들어왔을 때 사무소 변호사들은 수임에 회의적이었지만 기존 판례에 얽매어 패배를 속단하지 말고 대법원까지 가서 새 판례를 만든다는 각오로 임했다"며 "선분양 후시공 아파트 사업에 있어 동호수와 평수, 대금, 입주시기만 나와 있는 분양계약서만으로는 계약 내용을 특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대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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