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새 여자가 꿀꺽한 재산, 되찾을 수 없나요?"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조혜정 변호사 2018.09.17 10:49

Q)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올해 91세이시고요. 아버지와 같이 살던 계모가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해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6년 전쯤 집으로 찾아가 아버지를 한 번 뵌 후 지금까지 아버지와는 완전히 연락이 끊긴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그건 계모가 자식들과 아버지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6년 전인 85세 때 계모와 재혼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지금의 계모와 만나오셨습니다. 계모는 아버지보다 25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아버지가 계모를 처음 만났을 때 계모는 50대 초반, 아버지는 70대 후반이셨습니다. 50대 초반이던 계모가 70대 후반의 노인인 아버지를 만나는 목적이 도대체 뭐였겠습니까? 그 때만 해도 아버지는 서울시내 도처에 부동산을 가진 재산가였기 때문에 계모의 목적은 누가 봐도 돈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저희들은 아버지께 무수히 만나지 말라고 했지만 무엇에 홀렸는지 아버지는 계모와의 관계를 끊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계모를 못 만나게 하는 자식들과 사이가 멀어졌지요. 어머니는 계모 때문에 속을 너무 끓이셔서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고요.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나니 계모가 버젓이 아버지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들이 찾아가서 아버지를 말려보려다가 계모와 대판 싸움이 났고 그 다음부터는 집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저희들은 아버지를 뵌 적이 없습니다. 자식들이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아버지가 들으려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희들도 지쳤거든요. 어머니를 암으로 돌아가시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도 컸고요. 그런 상태로 6년이 훌쩍 흘러가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겁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계모에게 아버지 재산상속문제를 얘기하자고 했더니 계모는 아버지 재산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재산내역을 자필로 써서 주신 게 있는데 거기에 보면 서울 도처에 건물과 집, 땅이 있고 예금만 해도 6억원이 넘거든요.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수백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계모 말대로 정말 아버지 재산이 하나도 없다면 계모가 아버지가 정신이 흐려진 틈을 타서 빼돌린 것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해야 계모가 빼돌린 재산을 찾을 수 있을까요? 혹시나 해서 아버지 집 등기부를 떼어보니 계모와 결혼한 직후 계모에게 집의 1/2을 증여하고 6개월 후 나머지 1/2을 매매해서 현재 소유자가 계모로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계모에게 속아서 집을 뺏긴 것이 분명한데 계모를 사기로 형사고소할 수는 없을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계모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정신이 온전치 못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드네요.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치 못하셨으니 아버지가 재산처분한 것이 무효가 되는 건 아닌가요?


A) 안타까운 일이네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노인들은 자기 옆에 밀착해서 지내는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인의 이런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이 재산 있는 노인 옆에 붙어서 감언이설로 꼬이거나 겁박을 하게 되면 노인의 재산은 그 사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은 친한 후배일 수도 있고 자식이거나 후처일 수도 있습니다.

뒤늦은 후회입니다만 자녀분들이 나서서 아버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하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선생님 말씀대로 25살 차이나는 계모가 85세의 아버지를 만난다면 누가 봐도 그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자식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막으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요즘에는 장애, 질병, 노령 등으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게 후견인은 선임해주는 ‘성년후견’제도가 있는데 아버지에게 후견인이 있었다면 계모에게 속아 재산을 날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지요. 제일 먼저 하셔야 할 일은 아버님 명의 재산내역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시군구청에 가셔서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란 걸 이용하면 아버님의 각종 재산과 채무내역을 한꺼번에 찾으실 수 있습니다. 만일을 위해서 한 번 확인하시는 게 좋긴 한데 계모가 자신있게 아버지 재산이 없다고 한 걸 보면 이미 다 처리를 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찾아봐야 안 나올 것 같긴 하네요.

현재의 상황에서 자식들이 아버지 재산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버지가 계모에게 증여한 집 지분에 대해서 유류분반환청구를 하는 것입니다. 유류분은 일정한 상속인을 위해서 법률상 유보된 상속재산의 일정부분이라는 뜻인데, 상속인이 자기 유류분보다 상속을 적게 받으면 그 상속인은 다른 상속인이나 유증을 받은 사람에게 유류분 반환청구를 해서 자기 유류분 만큼은 확보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자식의 경우 유류분은 원래 상속받아야 할 지분의 1/2이고요. 아버지가 계모에게 집의 1/2 지분을 증여함으로써 자식들이 상속을 전혀 못 받게 되었으니 자식들은 유류분을 반환받을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유류분반환청구소송 과정에서 아버지와 계모의 재산변동내역에 대해서 법원을 통해 조회를 해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재산이 계모에게 이전된 내용을 찾을 수 있다면 유류분반환청구대상을 늘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모가 아버지 재산을 제3자에게 팔면서 그 대금을 표 안 나게 처리했다면 그런 부분은 법원을 통한 조회로는 밝히기 어렵습니다. 의도적으로 빼돌린 재산을 형사사건 수사가 아닌 법원조회를 통해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더라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계모를 사기로 형사고소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건 안됩니다. 계모가 아버지를 기망해서 아버지 재산을 가져갔는지를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으니까요. 일단 고소하면 경찰이 알아서 밝혀주지 않겠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런 종류 사건의 경우에는 고소인이 증거를 구체적으로 제출하지 못하면 무혐의로 판단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계모가 아버지 재산을 빼돌린 사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의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라는 규정이 있어서 아버지의 배우자인 계모는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정신이 온전치 못했으니 계모에게 준 행위가 무효가 아니냐고 하시는데, 아버지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증거가 없습니다. 이미 행해진 법률행위가 무효가 되려면 무효를 주장하는 측에서 무효사유를 입증할 책임이 있는데 자녀들에게 무효사유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무효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유감이지만 유류분반환청구 말고는 신통한 방법이 없다는 게 결론입니다. 다시 한 번 안타깝다는 말씀 드립니다.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2005년부터 10여년 간 가사소송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10여년간의 가사소송 수행에서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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