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원 시계, 편의점 택배 맡겼다가, 그만…

[친절한 판례씨] 편의점 택배서비스, '택배영업'은 아니지만 '편의점 영업'의 일환…'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김종훈 기자 2018.09.18 05:05
/사진=pixabay

요즘 편의점은 단순히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배달 서비스를 하는 곳도 있고, 매장에서 직접 밥을 지어주는 곳도 있다. 주민등록등본 같은 각종 증명서를 떼주는 건 물론 항공권 발권 서비스를 하는 곳도 있다. 편의점 업무를 두고 '극한 직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중 손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서비스 가운데 하나가 택배다. 언제 어디서든지 간편하게 물건을 보내고 받을 수 있어서다.

반면 편의점 업주들에게 택배는 달갑지 않은 업무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의 물건을 맡아 전달하는 일이라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프다. 이런 편의점 택배의 특성을 이용해 편의점 직원을 속이고 물건을 빼돌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손해배상 책임은 누가, 얼마만큼 져야 할까? 실제로 손님이 맡긴 1000만원짜리 시계를 눈뜨고 빼앗긴 편의점 업주의 사례(대전지법, 2014나18627)가 있어 소개한다.

시계애호가 A씨는 아내의 차를 마련하는 데 돈을 보태기 위해 백화점에서 산 고급 시계를 중고로 팔기로 했다. 시계 관련 사이트에 판매 글을 올리자 윤모씨라는 사람이 연락해왔고, A씨는 이 사람에게 1250만원을 받고 시계를 팔기로 했다.

윤씨는 A씨에게 "편의점 택배로 시계를 보내고 운송장을 찍어서 보내주면 1시간 내로 입금해주겠다"고 말했다. A씨는 이 말을 믿고 시계와 여유분으로 갖고있던 가죽끈을 상자에 넣어 편의점 무인택배기로 가져갔다. 편의점을 보고 있던 업주 B씨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묻고 100만원이 넘는 비싼 물건은 접수하지 않는다고 안내했다. 

A씨는 이 안내를 받고 무인택배기에 물품가격을 '100만원'으로 입력한 뒤 운송장 출력본을 찍어 윤씨에게 보냈다. A씨는 윤씨가 돈을 보내지 않을 것을 걱정했는지 "확실하게 택배를 보낸다고 다시 말할테니 그때 보내달라"고 B씨에게 당부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얼마 후 어떤 사람이 B씨에게 전화를 걸어 시계가 언제 배송되는지를 물었고, 동생을 보내 택배상자를 가져가겠다면서 택배접수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곧이어 어떤 사람이 찾아와 물건을 달라고 했고, B씨는 별다른 확인없이 시계가 든 택배상자를 건넸다. 윤씨의 소행이었다.

A씨는 윤씨에게 속은 것을 뒤늦게 알고 경찰에 신고했으나 윤씨를 붙잡지 못했다. 윤씨라는 이름도 가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A씨는 B씨에게 시계값 1250만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 A씨는 시계를 맡긴 시점부터 B씨와 택배계약을 체결한 것이고, B씨가 계약 상대방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가 났으므로 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B씨는 A씨가 "확실하게 택배를 보낸다고 다시 말할 테니 그때 보내달라"고 말한 점을 지적하면서 택배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1·2심 재판부는 B씨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와 B씨 사이에 택배계약이 성립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B씨는 편의점 업주일 뿐, 택배영업으로 이득을 올리는 택배사업자는 아니기 때문에 택배계약의 상대방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대신 재판부는 A씨와 B씨 사이에 임치계약이 성립한 것은 맞다고 판단했다. 민법 제693조에 따르면 임치는 상대방에게 금전이나 물건의 보관을 위탁하는 것을 뜻한다. 상법 제47조 제2항에 따르면 상인의 행위는 영업을 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B씨가 시계가 든 택배상자를 임치한 것 역시 편의점 영업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했다. 이후 상법 제62조에 따라 B씨가 택배 물건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부담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다하지 않아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B씨가 100만원만 지급하면 된다고 판결했다. B씨가 100만원 이상의 물건은 접수받지 않는다고 안내한 점, A씨가 이 안내를 듣고도 직접 무인택배기에 물품 가격을 100만원으로 입력하고 택배를 맡긴 점, 운송장 정보를 노출한 A씨의 책임이 있는 점 등을 감안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 상고 없이 확정됐다.

◇관련조항

민법

제693조(임치의 의의) 임치는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금전이나 유가증권 기타 물건의 보관을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
상법

제47조(보조적 상행위) ①상인이 영업을 위하여 하는 행위는 상행위로 본다.
②상인의 행위는 영업을 위하여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제62조(임치를 받은 상인의 책임) 상인이 그 영업범위내에서 물건의 임치를 받은 경우에는 보수를 받지 아니하는 때에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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