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대법 문건파기' 前 판사 구속 불발… "증거인멸 우려없다"

'사법농단' 관련 檢 첫 구속시도 불발… 법원 "증거인멸, 도주우려 없다"

황국상 기자 2018.09.20 22:40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52·사법연수원 19기·현재 변호사)이 20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유 변호사에 대해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절도,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사진제공=뉴스1



양승태 사법부에서 자행된 '사법농단' 의혹을 규명하려던 검찰의 수사가 또 법원에 가로막혔다. 사법농단 수사를 피해 대법원에서 빼돌린 문건을 파쇄했다는 등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게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것이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사법부 관계자에 대한 검찰의 첫 번째 구속 시도가 불발된 셈이다.

◇"구속의 필요성·상당성 인정 못해"… 이유는?

20일 법원에 따르면 허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 공무상 비밀누설, 직권남용,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절도,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유 전 연구관에 대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진행한 후 "구속의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유 전 연구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검토한 보고서 등 원본이 포함된 대법원 기밀 문건들을 무단으로 반출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보유하던 문건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유 전 연구관은 검찰에 '문건을 파기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써줬음에도 압수수색 영장 기각 소식을 들은 후 해당 문건들을 파기했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등에 개입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또 유 전 연구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이었던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특허소송과 관련한 정보가 법원에서 법원행정처로 넘어가는 과정에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이와 함께 유 전 연구관은 대법원 재직 시절 관할하던 '숙명학원 변상금 부과 처분'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 수임한 혐의를 받는다. 실제 유 전 연구관은 이 사건을 수임해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검찰은 이를 '공무원이 재직 중 취급한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보고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허 부장판사는 "영장 청구서 기재사항 중 변호사법 위반의 점을 제외한 나머지 범죄는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등,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존재한다"며 "피의사실과 관련된 문건 등을 삭제한 것을 들어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그 밖에 문건 등 삭제 경위에 관한 피의자와 참여자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허 부장판사에 따르면 유 전 연구관 등은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 당시 영장에 기재된 방법을 어긴 위법한 집행시도가 있었다" "이 피의사실은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인지한 것이다" "피의자는 수사기관에 의해 언론에 알려지고 보도된 압수수색 영장의 기각 사유가 범죄 불성립이라는 것을 알고 향후 무관한 정보의 탐색·수집 시도가 재차 이어질 것을 우려해 삭제한 것이다" 등의 진술을 이날 영장심사에서 했다.


◇공무상 비밀누설, 직권남용 혐의도 모두 부정
허 부장판사는 또 유 전 연구관에 적용된 공무상 비밀누설 및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피의 사실의 요지는 수석재판연구관이었던 피의자가 대법원에 계류된 특정 사건에 관해 재판연구관으로 하여금 '사안요약'이라는 문건을 작성하게 하고 이 문건을 편집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함으로써 '공무상 비밀'인 사건진행 정보를 누설하고 위 연구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문건에는 일반적 사항 외에 비밀 유지가 필요한 사항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없어 공무상 비밀누설죄의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며 "문건을 작성한 재판연구관의 진술내용과, 피의자가 문건 작성 시기에 이미 해당 사건의 당사자가 이른바 '비선 실세'로서 전직 대통령의 미용성형 시술을 해주던 사람의 회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했다.

이어 "임 전 차장이 제출한 USB 등에 저장된 수만 개의 파일 중 피의자로부터 받은 것은 4개이고 그 중 위 파일 1개만 문제가 있다고 지적됐다"며 "달리 피의자가 임 전 차장과 연계됐다는 부분에 대한 소명도 부족하다"고 봤다. 유 전 연구관이 문건 작성을 지시한 행위 자체가 위법하다거나 지시 행위에 부당한 목적, 즉 당시 청와대 관심 사항에 도움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개입됐다고 보기 어려워 직권남용죄의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허 부장판사의 판단이었다.

아울러 허 부장판사는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및 대법원 문건자료에 대한 절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재판연구관 보고서 관리시스템에서 파일들을 내려받아 저장하는 게 기록물 원본을 유출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점, 피의자가 USB에 저장된 보고서 파일을 전달받을 당시 개인적 목적에 사용할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종전 압수수색 영장 청구 당시 포함돼 있다가 이번 청구에서 제외된 형사절차 전자화법 위반죄와 마찬가지로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재판연구관 보고서 파일은 절도죄의 객체가 되는 '재물'에 해당하지 않고 이 보고서에는 당사자 성명 외 그 자체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을 만한 아무런 정보가 기재돼 있지 않다"며 "이 부분 혐의에 대해서도 범죄 성립 여부에 법리상 의문이 있다"고 했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공무원으로 재직 당시의 피의자 직책과 담당 업무의 내용 등에 근거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이 부분 관련 증거들은 이미 수집돼 있는 데다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임을 감안할 때 구속의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공유하기

1 / 6